책의 향기 속으로

김려령의 '완득이'를 읽고.

김 정아 2009. 9. 18. 22:53

2009년 9월 18일 금요일

올 여름에 한국에 다녀 온 친구가 선물로 받았다며 나한테 읽어보라며 책을 내밀었다.

 

이 소설은 '청소년 성장소설'로 분류 될 수 있을 것 같다.

건달같은 고등학생 완득, 건달같은 완득의 담임교사 똥주, 베트남에서 시집와서 완득을 낳자마자 집을 나간 어머니, 카바레에서 춤추는 난쟁이 아빠, 말을 더듬으며 춤을 가르치는 완득이의 삼촌등이 나온다.

 

완득은 태어나자마자 어머니에게 버려지고 카바레에 나가는 옆집 누나들과 카바레에서 춤추며 생계를 이어가는 아버지 사이에서 기초생활수급자로 성장한다.

그래도 아버지가 자식에 대한 교육열이 있어 학교 근처의 옥탑방으로 이사를 가고, 그곳에서 역시 옆집 옥탑방에 완득의 담임 선생님이 살고 있다.

사회교사인 똥주는 학생들에게 쌍소리를 하며 학생들을 함부로 대하며 자격미달의 교사처럼 보이지만 실상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한 쉼터를 운영하며 그들의 인권을 위해 애 쓰는 사람이다.

똥주의 노력으로 베트남 어머니를 만나기도 하고 완득의 재능을 알아차린 킥 복싱 원장을 만나 킥복싱 선수로 입문하는 과정도 나와 있다.

처음에 아버지는 완득의 킥복싱에 반대한다.

자신처럼 뒷골목 인생을 물려주고 싶지 않아 소설가가 되기를 원하지만 싸움과 킥복싱이라는 스포츠는 다르다는 것을 알고 완득의 삶을 인정하기로 한다.

 

가진 것 없고 배운 것 없는 하층민을 다룬 소설인데 소설 어디에도 어두운 면은 보이지 않는다.

완득의 생각이 묘사되는 부분에서는 웃음이 나기도 한다.

교회에서 담임 똥주를 죽여달라고 하느님께 기도하는 모습에서는 어린이 같은 순수함마저 느끼게 한다.

이제 우리 사회에 '단일민족'이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여러 민족들과 어울려 살아가고 있고, 외국인 노동자들이 낳은 자녀들이 벌써 청소년기를 넘어갈 만큼 그 기간도 꽤 오래 되었다.

어두운 사회 단면이나 외국인 노동자들의 문제를 전혀 어둡게 표현하지 않는 재능을 가진 작가라는 생각이 든다.

 

이제 우리 사회도 더 넓은 아량과 포용력으로 21세기를 살아야할 것 같은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