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 속으로

박완서님의 '한 말씀만 하소서'를 읽고.

김 정아 2009. 7. 4. 08:33

2009년 7월 3일 토요일

성당 도서실에서 빌려온 책이다.

 박완서님의 일기이며 일종의 신앙 고백서 같은 종류의 책이다.

1988년도에 하나 밖에 없는 의사 아들을 잃은 엄마의 절절한 애통함과 비통함으로 가득찬 책이었다.

세상에 자식 앞세워 보낸 부모의 마음을 경험 없는 사람은 만분의 일도 헤아리지 못할 것이다.

 

남들의 위로와 애도마저 받기 싫어 부산의 딸네 집에 내려가 머물다 분도 수녀원으로 들어가 완전히 홀로 되어 신께 포악과 반항으로 울부짖는다.

"왜 하필이면 나입니까, 남편도 데려가고 왜 내 아들을 또 잡아 갔습니까? 내가 세상 살면서 무슨 죄를 저질렀기에 하나 밖에 없는, 앞길이 창창한 내 아들을 데려갔습니까?"하며 온몸으로 울부짖으며 신의 대답을 구한다.

그러기를 수 십일,변기를 붙잡고 먹은 음식을 토해내며 신의 음성을 듣는다.

'너의 죄는 이웃을 돌아보지 않고 교만하게 산 죄다.'

마음에 차지는 않았지만 분도 수녀원을 나와 미국에 있는 막내딸 집에 간다.

내 나라 땅에 살면서 내 언어로 글을 쓰고 말을 하며 아무 거리낌없이 살던 그에게 이방인의 말은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다시 한국에 돌아가면 아들 잃은 슬픔은 잠시 잊고 아름다운 언어로 다시 글을 쓸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로부터 10년이 더 지난 지금 그 분의 아들 잃은 슬픔이 조금이라도 희석이 되었을까?

아마 그 슬픔은 죽음을 통해서나 없어질 것같다.

 

이 글은 다름아닌 내 엄마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40대, 한참 아이들을 키워야 할 나이에 남편을 잃은 슬픔이 간신히 치유되어 가고 있는 즈음에 마흔 살밖에 되지 않은 큰 아들을 암으로 잃었으니 그 삶의 고통을 상상도 하기 싫다.

하느님을 만나 그 안에 치유를 받으며 세상 떠난 이후에 아들을 만날 희망의 끈으로 삶을 이어가고 있다.

왜 하필 내 엄마가 그런 고통을 당해야 하는지 나도 신에게 묻는다.

그러나 신은 나에게 아무 대답도 해 주지 않는다.

 

대답을 못 들어도 난 오늘도 신께 기도한다.

'주님, 모든 연옥영혼을 위해 기도합니다.

특히 세상 떠난 지 1년 6개월이 지난 동생이 아직도 연옥을 헤매고 있다면 이제 천국 문을 활짝 여시고 동생을 주님 옆에 올려 주십시오.

세상 살면서 두 번이나 큰 고통을 주셨습니다. 

그 고통을 다 아시잖아요.이제 그만 천국으로 이끌어 주십시오.

 

주님, 저희 엄마 인생에 가장 소중한 두 사람을 먼저 데려가셨습니다.

그 가여운 영혼을 위로하시어 남은 여생 동안 평화로운 몸과 마음을 허락하시어 평온한 삶을 살다 가게 해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