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 속으로

조정래님의 '한강'을 읽고 1.(1권~ 4권)

김 정아 2007. 6. 7. 05:11
 

2007년 6월 6일 수요일

윤지네 집에서 빌려 온 한강을 읽었다.

윤지네 집에 4권이 있었는데 난 그 4권이 책 전체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10권짜리였다.

책이 개정되고 개정되면서 분량이 늘었는지 윤지엄마는 4권이 전부라고 했었다.

다 읽지도 않은 책의 독후감을 쓴다는 게 어설프지만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기록을 해 두어야 할 것 같다.

나머지 여섯 권을 어디서 구해 계속 읽는다 하더라도 앞부분이 생각이 안 나면 난감하니 일단 기록하고 기회가 되어서 마지막 권까지 읽게 된다면 더 바랄 게 없긴 할 것 같다.

어쨌든 그 4권도 내게는 부담이어서 안 읽을까 하다가 내가 아주 좋아하는 작가의 책이라 시간이 좀 많이 걸려도 읽어 보기로 했다.


태백산맥과 아리랑에 이어 6.25전쟁이 끝나고 어수선한 戰後(전후), 서울로 서울로 향하던 이농현상이 주를 이루는 최현대사의 대한민국을 다룬 소설이다.

조정래님의 많은 소설의 공간적 배경이 전남의 강진이니, 벌교, 화순인 것처럼 이 소설에서도 유일민, 유일표, 이규백, 김선오, 홍석주, 강기수등의 주요 인물의 고향도 여전히 그곳이다.

많은 사람들이 하루 끼니 걱정을 하며 최하위 계층을 이루며 살고, 너나 없이 죽지 못해 살아가는 현실에서 그래도 가장 내 마음을 안타깝게 하는 이들은 유일민과 유일표 형제였다.

좌익운동을 하다 북으로 넘어간 아버지로 인해 그들은 일류 대학을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연좌제에 묶여 자기들의 뜻을 펼치기는커녕 수시로 중정에 끌려가 온갖 고난과 수난을 당하고 취업을 할 수도 없다.

동생 일표는 넝마주이 단체로 들어가 넝마를 주우며 야학을 하면서 세상을 향한 분노를 삭이며 살아가고 , 형 일민 또한 여자 부모의 반대로 사랑하는 여인을 다른 곳에 시집보내고 그녀가 모아 보내준 50만원으로 술 장사를 시작한다.

뛰어난 인재들이 사회가 만들어 놓은 연좌제라는 소리 없는 쇠사슬에 묶여 대한민국을 원망하며 청춘을 원망하며 살아야 하는 그 불합리한 제도에 마음이 아팠다.

그 연좌제가 1980년에서야 없어졌으니 그 소설 속의 유일민 형제에게 평생을 옥죄는 악법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친일을 했고 광복군을 무자비로 가두고 사살한 강기수는 해방을 맞고 전쟁이후에도 망하기는커녕 탄탄대로를 거쳐 국회의원이 된다.

어떤 정치적 위기에서도 쓰러지지 않고 여기 저기 붙어 다니며 끝까지 살아남는 최고의 기회주의자로 부상한다.

전남 지역에서 찢어지게 가난한, 일류대 법학과에 붙어 상경한 젊은 인재들을 위해 장학사를 운영하며 겉으로 장학 사업을 하면서 속으로는 고등고시에 합격한 그들을 수족처럼 부리며 , 사위를 삼으며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한다.

그 권모술수도 능력이라면 능력이라고 해야 될까?


극심한 흉년과 가뭄, 또는 홍수로 농사를 지어도 고리채에 다 뺏기고 논도   뺏기도, 밭도 뺏긴 가진 것 하나 없는 농민들이 서울로 서울로 올라오면서 어린 여공들은 사람 취급 못 받고 하루 15시간 이상을 착취당하면서 폐결핵을 앓고, 꽃 같은 여자 차장들이 돈을 챙기지 않았는지 남자들의 그악한 손에 신체검사를 받으며, 미싱에 손가락이 잘려 나가도 항변 한 마디 못하는 어처구니없는 현실 앞에 가슴이 아팠고 그런 선배들이 있었기에 그나마 지금 같은 기업문화가 있게 된 것은 아닐까 싶다.

아니, 그렇지도 않다. 비정규 직원들의 문제는 분명 그 연장선상에 있는 것 일 테니까.

점심을 굶어가며 물 한 바가지로 배를 채워가며 살아도 그들에게 더 나은 생활은 없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월남으로 생명을 담보로 전쟁을 나가기도 하고, 서독으로 광부나 간호원으로 나가기도 했다.


교과서에서 대한민국 현대사를 몇 페이지나 배웠을까?

난 이 책에서 한 나라를 지탱하는 가난한 서민들의 생활을 구체적으로 느끼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