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쁘거나 슬프거나..

무지하게 바빴던 하루.

김 정아 2006. 12. 11. 08:57
 

2006년 12월 9일 토요일

우리 가족 모두 바쁜 하루를 보낸 휴일이었다.


원석이는 리전 밴드 시험을 보는 날이었다.

남자 아이치고 꼼꼼하고 자기 일을 알아서 잘 처리하는 줄 알고 큰 아이에게 별 잔소리를 안 하는 편이다.

리전 준비를 위해 오래 전부터 클라리넷 레슨을 받고 있었는데 추수감사절이 끝나고 얼마 안 있어 자기도 모르는 사이 리전 시험이 끝나버려서 시험을 못 보았다는 것이다.

난 아무래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난 12월 초로 알고 있었고, 중요한 시험이기 때문에 학교에서 여러 번 공지를 하는데 리전 시험 날을 놓쳤다는 게 말이 안 되는 것이다.

아이는 아빠에게 정신을 어디다 놓고 학교를 다니느냐고 엄청 혼났는데 바로 오늘이 리전 날인 것이다.

며칠 동안 열심히 연습을 했고 , 아이는 거의 마음을 비우고 시험에 임했었다.

1시 반부터 시험인데 일찍 가서 연습을 하고 싶다고 해서 12시에 시험 보는 학교로 데려다 주었는데 7시가 넘어서야 데리러 오라는 전화가 왔다.

결과가 어떻게 되었느냐고 물으니 지금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라고 해서 학교에 가서 잠시 기다리는데 아이는 환호성을 지르며 뛰어 나왔다.

클라리넷 33명 중에 5등으로 리전 밴드에 들어갔다는 것이다.

솔직히 합격 할 줄 몰랐는데 의외의 결과에 너무나 흥분한 모습이다.

집에 돌아와 잠시 후에 클라리넷 파트 부분 파티가 있다고 해서 가더니 밤 11시가 넘어 돌아왔다.


나연이는 오늘 ‘student council’에서 고아원 같은 곳을 방문했다.

학교에서 모은 물건을 ‘boys & girls country'에 가서 전달하고 그들과 잠시 시간을 갖고 돌아오는 모임이었다.

집에서도 40분 이상을 가야 하는 곳이어 갔다가, 2시 정도에 끝난다고 해 집에서 기다리다 1시 20분 쯤 나가려고 시동을 걸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지금 벌써 끝났단다.

아니 이렇게 일찍 끝나면 어떻게 해? 완전히 당황스러웠다.

그런데 미국 엄마가 전화를 바꾸더니 지금 출발하지 않았으면 집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데려다 주겠다고 한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고 우리 집 찾기가 힘들 것이니 큰 쇼핑센터에서 만나자고 통화를 하고 나연이에게도 Randall 앞에서 기다리겠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Randall 앞에서 한참을 기다렸는데도 소식이 없어 차가 밀리나보다 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미국 엄마가 우리 집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지금 어디냐는 것이다.

난 분명 쇼핑센터 앞에서 기다리겠다고 했는데 의사소통이 안 된 것이었다.

그런데 더 실망스러웠던 것은 나연이와 나의 의사가 통하지 않은 것이다.

내 발음이 영 이상해 미국 아줌마가 못 알아들을 것 같아 나연이에게 한 번 강조했던 것인데 그 아이마저 나와 소통이 안 되다니 더 크면 딸과 대화 자체가 안 될 것 같아 속상했다.


난 휴일을 맞아 늦잠을 즐기며 여유를 부리고 있었는데, 새벽 5시에 중국에서 온 출장자를 공항에 모셔다 드리고 사무실에 가 있는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출장자들이 라면을 먹고 싶어 하는데 좀 끓여 줄 수 있느냐며 30분 후에 가겠다고 한다.

아침부터 웬 라면?

밥을 하라는 소리는 차마 못하고 라면이라는 말로 돌려 말을 한 것 같다.

설령 출장자들이 정말로 라면을 드시고 싶어 한다고 해도 아침부터 라면을 끓여 드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난 세수 간신히 하고 잠 잔 이부자리도 정리하지 못하고 후다닥 부엌으로 뛰어 가 냉장고를 뒤져 아침상을 차려 냈다.

쌓인 설거지거리를 간신히 끝내고 나연이를 태우고 고아원에 갔다가 부랴부랴 집에 돌아와 또 큰 아이를 태우고 리전 시험 보는 곳에 데려다 주었다.

간신히 정신을 좀 차리고 있다가 나연이를 데리러 쇼핑센터에서 30분을 소모하다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빠진 서류를 가지러 집에 돌아온 남편은 출장자들과 함께 먹을 저녁 식사를 좀 준비해 달라고 한다.

시간이 4시가 되어 가고 있을 때였다.

아침이야 간소한 게 용납이 된다 해도 저녁은 신경을 써야 하는데 그 시간에 한국 장에 갔다 오려면 적어도 두 시간은 걸리는데 도저히 못 가고 대신 미국 장을 보러 갔다.

운전하는 사이 머리를 있는 데로 굴려 메뉴를 생각하고 , 사야 할 것들을 기억해 최소한 빠른 시간 내 장을 보고 돌아왔다.


내가 남편을 도울 수 있는 일은 남편의 손님이나 한국 중국 뉴욕에서 남편을 보고 출장 오시는 분들에게 뜨거운 밥 한 끼 해서 내놓는 거라 생각하기 때문에 집에 손님들을 초대하는 것에 아무런 불만이 없다.

그런데 이렇게 빠듯한 시간에 식사를 준비하라고 하면 아주 화가 치솟는다.

아침 식사에 이어 저녁까지 이렇게 발을 동동 굴러야 해 하면서도 열이 막 받았다.

어찌 어찌 거의 다 준비해 가는데 원석이 데리러 오라는 소리에 마늘 냄새 양파 냄새 묻혀가며 운전해 갔다.


집에 들어와 5분 정도 지나니 남편과 출장자들이 들어왔다.

원석이가 클라리넷 파티에 가고 싶어 해 남편에게 준비해 놓은 음식으로 밥상을 차리라고 말하고 원석을 데려다 주고 왔다.

많은 설거지를 끝내고 11시가 다 되어 다시 큰 아이를 데리러 갔다.

 

여유 있는 전업주부 아줌마로 살다가 갑자기 일이 이렇게 많은 날은 적응이 안 되어 괜히 화가 난다.

 

남편도 물론 새벽 5시에 하루를 열어 하루종일 사무실에서 바빴다.

어떻게 바빴는지는 대화를 하지 못해 모르겠다.

바쁜 하루가 이렇게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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