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학교 졸업 이후 처음으로 찾아간 내 마음의 고향

김 정아 2006. 6. 4. 16:17

2006년 6월 4일 일요일

 

한국에 오면 내 자신을 위해 꼭 가보고 싶은 곳이 있었다.

내가 다녔던 초등학교 중학교를 꼭 한 번 가보고 싶었다.

내려오자마자 여동생에게 토요일이나 일요일은 꼭 나를 데려다 달라고 부탁을 했다.

 

바쁜 동생이지만 오늘은 오전에 시간을 내서 같이 가자고 해서 길을 나섰다.

50분을 걸어서 다녔던 초등학교.

그렇게 넓어 보였던 운동장이 오늘은 왜 이리 좁아 보이던지.

시골 학생들이 줄어 이제는 얼마나 되는 학생들이 학교를 다니는지 모르지만 운동장 한 복판에도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듯 풀이 푸릇푸릇하게 돋아 있었고, 조회대 위쪽의 언덕도 잡풀이 한 길씩 자라 있었다.

힘들게 오르내렸던 계단들이 우습게 보일만큼 몇 계단이 되지 않았다.

귀신이 나온다고 해서 무서워했던 교사는 병설유치원 건물로 바뀌어 있었다.

 

학교 구석구석을 둘러 보고 차를 돌려 내가 다니던 중학교를 갔다.

그 근처에서는 볼수 없을 만큼 넓은 교정에 아름다운 모습을 한 학교였다.

사립 중, 고가 같이 있어 운동장을 같이 쓰던 아름다운 학교는 아주 많이 변해 있었다.

운동장을 잔디로 깔아 놓고 있었다.

1980년 광주 항쟁이 있었던 그 시절에 나는 중 3이었다.

테니스장 아래로 넓은 정원이 있었고 그 곳에서 우리는 귓속말로 어디서 떠 다니는 유언비어라며 그 무서운 광주 이야기를 나누었었는데 지금 그 정원은 없어져 버렸다.

추억이 많았던 학교가 바뀌었어도 여전히 내 추억을 안고 있는 커다란 벚꽃나무가 있어 어린 시절의 기쁨이 되살아 났다.

언제 다시 올 것 같지 않아 눈에 가득, 마음에 가득 풍경을 담고 담았다.

마음 가득 충만한 기쁨을 안고 돌아왔다.

 

*농어촌 지역의 학교라 학생이 줄었는지 운동장 곳곳이 풀이 나 있었습니다.위에서부터 3장은 초등학교 사진입니다.

 

 

*졸업식 때 저 동상 앞에서 사진을 찍었는데 녹이 슨 채 그대로 서 있었습니다.

 

*제가 다녔던 사립 중학교입니다. 그 사이 운동장엔 잔디가 깔려 있더군요.

 

 

*오른쪽으로 벚꽃 두 나무가, 왼쪽에도 두 나무가 있었는데 많이 컸습니다. 저 스탠드가 좁아 신입생들은 테니스 장쪽으로 의자를 내 놓고 앉았어요.

 

 

*학교를 세웠던 설립자 입니다. 녹이 슨 채 서 있었습니다.

 

학교 체육관이 그대로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