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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직생활 14년을 돌아보다3.- 광명의 한 여중(95~99년 2월)

김 정아 2006. 3. 12. 00:45

2006년 3월 11일 토요일

 

집이 있는 광명으로 전근을 했지만 내가 발령 받은 학교는 안타깝게도  우리집에서 가장 먼 곳에 있는 학교였고, 시내를 관통해 가야 해 시간이 꽤 걸리는 거리였다.

그렇지만 버스를 두 번씩 갈아타고 다니던 불편함은 없어졌다.

힘들게 딴 운전면허를 이용해 가끔은 차를 가지고 다니기도 했다.

 

도덕산 밑에 자리잡은 학교는 계절마다 다른 아름다움으로 변해 점심 시간을 이용해 도덕산 밑자락을 오르는 여유를 부리기도 했다.

 

처음에 부임했을 땐 나를 포함해 두 명의 한문교사가 있었지만 다음해 컴퓨터를 신설과목으로 추가 선택해 이전에 있던 한문교사가 빠져 나가 홀로 한문을 맡아야 했다.

2학년 전체와 3학년 전체를 맡아야 해서 전 교사 중 들어가는 학급수가 가장 많았다.

나처럼 많은 학급을 들어가지 않는 국어 교사들이 때론 부럽기도 했다.

같은 스무 시간이라 해도 국어는 일주일 다섯 시간이니 4반만 들어가도 되는데 난 한 시간 이라 스무 반을 들어가야 한다.

아이들과의 교감도 이루어 지지 않고 , 어쩌다 학교 행사라도 있게 되는 날이면 2 주일에 한 번 또는 3주일에 얼굴을 보게 되어 서먹함도 내재되어 있기도 하다.

게다가 시험 채점이라도 하고,성적 전표라도 내야 하는 날엔 국어 선생님들이 엄청 부러웠다.

국어 선생님들은 4반 채점만 하면 되는 것을 난 스무 반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또한 스무 반이나 되는 수행평가도 만만치 않은 부담이었다.

그래도 학교 일은 워낙 손이 빨라서 가장 많은 분량이지만 가장 빨리 처리하곤 했었다.

 

교사들 임무 중 수업보다도 더 힘든 것은 담임 업무다.

55명이나 되는 아이들의 생활지도 뿐만 아니라 학급 일이 너무 힘에 부친다.

그 때는 전산 기록과 수 작업을 병행해야 해서 엄청나게 많은 이중의 일을 해야 했다.

4년이 지난 지금은 어쩐지 모르겠다.

종이로 된 출석부 정리뿐만 아니라 같은 내용으로 전산 작업까지 해야 되었고, 생활기록부도 손으로 기록하는 것 이외도 같은 작업을 전산으로 해야 되어서 눈 코 뜰 사이가 없이 바쁘기만 했다.

그래서 많은 교사들이 수업을 많이 할 망정 담임을 기피하게 되는데 근무하는 4년 동안 담임은 두 번밖에 안 했다.

한 해는 4년 터울의 둘째 아이의 출산으로 담임에서 제외 되었고, 한 해는 순회교사를 나가느라 담임에서 제외 되었기 때문이다.

 

근무했던 학교 중 가장 시간 여유가 있던 근무지였다

순회교사로 나가던 그 해는 참으로 여유가 있어서 다른 선생님들의 부러움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순회교사에겐 담임은 물론 특별활동, 업무 분장에서 제외 해 주었고 수업 시수도 주당 16시간 이상은 못 주게 되어 있었다.

그래서 월요일, 화요일은 모 여중에서 수업을 했고 나머지는 본교에 와서 수업을 했었다.

물론 남의 학교로 출장을 나가 가르친다는 부담감이 상당했다.

한 동안 내 자리도 없어 남의 자리에 끼어 앉아 있다가 오고 , 어설프게 그 곳 교사도 아니어 약간의 괴리감도 느껴야 했으나 일년 동안 출근하면서 그 학교 선생님들과도 나름대로 친분을 유지하기도 했다.

특히 교감 선생님은 자기 학교 선생님이 아니라는 편안함 때문에 나와 학교 이야기를 많이 나누기도 했다.

내 학교도 아니고 일주일에 두 번 출근하는 학교에서 교생을 맡아 지도 했던 것은 지금 생각해도 우습기 그지 없다.

그 학교 졸업생이라 꼭 받아 주어야 한다며 교감 선생님께서 간절히 부탁을 하는데 뿌리치기도 면목 없어 월, 화요일 이후엔 전화로 교생을 지도 했던  헤프닝도 있었다.

두 학교의 시험문제를 내고 채점을 하는 것은 또 다른 힘든 일이었다.

 

그러나 시간적 여유로움이 많아 행복하게 해 낼 수 있었다.

특별히 어렵고 힘든 일 없이 4년을 근무하다 내가 사는 아파트 단지 안의 중학교로 전근을 하게 되었다.

 

 

*남편의 주재원 임기가 끝나면 당연히 한국에 돌아간다는 생각에서 중요한 앨범을 하나도 가져 오지 못했습니다.학생들과 같이 찍은 사진이 딱 한 장 있습니다.

어느 학교를 가나 호흡이 찰떡 궁합처럼 잘 맞는 반이 있었습니다.

세번 째 학교에서 담임했던 아이들인데 어찌나 예쁜지 "우리 예쁜 아이들, 우리 착한 아이들"이란 말을 입에 달고 살았던 아이들이었습니다.

경주 불국사 수학여행 때 찍은 사진인데 이 아이들이 벌써 스물 다섯 살이 되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