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남자에 대해

만 2년 -이제 남편의 구박도 벗어나고....

김 정아 2004. 2. 19. 03:40

2월 19일 목요일 

우리가 여기 온지 이제 만 2년이 되는 날이다.

모든 게 낯설고 두려움으로 다가왔던 지난 2년간의 세월이 참으로 빨리 지나갔다.

그와 더불어 남편의 구박으로부터도 어느 정도 벗어나게 된 세월이다.

 

어느 것 하나 마음처럼 되는 게 없어 모든 것에 불안하고 자신감이 없던 나에게 남편은 또 하나의 벽이었다.

보통의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면 자기가 아는 것 하나라도 가르쳐주며 새 생활을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다독여 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남편은 너무나 매몰찬 행동으로 일관했다.

차에 기름이 없어 차를 좀 바꾸어서 타자고 했을 때(여기는 모두 자기 넣어야 함) 나를 데리고 나가 딱 한번 기름 넣는 법 가르쳐 주더니 그 다음은 돌아보지도 않았다.

차 산지 보름도 안되어서 기름 넣고 다닌 사람은 나 밖에 없을 것이다.

 

현금이 없으니 돈 좀 달라고 했을 때, 카드 한 장 식탁 위에 놓고 나가버렸다.

눈물을 머금고, 자존심도 접고 아이들 피아노 선생님 따라 나가 현금 찾는 법을 배웠을 땐 정말이지 남편을 절대로 용서하지 않으려 했다.

 

여기 온지 4개월 만에 한국 출장 간다며 Bush공항까지 태워 달라고 무지막지하게 강요해, 오는 길에 길을 잃고 헤맸을 때의 그 끔찍했던 기억도 잊지 않으려 했다.

 

내가 불만을 말할 때 마다 대답은 항상 같다.

내가 이렇게 강하게 안 하면 당신 언제까지나 나한테 의지하려고 할 거야. 우리가 여기서 하루 이틀 살 것도 아니고 앞으로 4년은 살아야 하는데 당신 스스로 부딪혀서 알아가는 게 제일 빠른 길이야

 

웃기지도 않는다. 영어 좀 한다고 뻐긴다.

어느 회사의 부인은 하루에 10번도 더 넘게 사무실로  전화해서 중요한 일도 아닌, 영어 단어의 뜻을 묻거나 뭘 어디 가서 사야 되느냐고 묻는다고 한다.

그러면 그 남편은 일 하다 말고 사전 찾아서 뜻을 설명을 해 주고, 자상하게 월마트를 가라든지, HEB를 가라든지 말해준단다.

 

난 그 정도까지는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도 않는다.

내가 바보도 아니고 영어 사전을 찾든, 누구에게 물어보든 내 손에서 해결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굳이 남편에게 구차스럽게 물어 보고 싶은 생각도 없는 사람이다.

 

인색하고 독한 남편 덕에 다른 부인들 안 해본 것 난 참 많이 해 보았다.

집을 사면서 50장도 넘는,읽어 볼 수도 없는 영어계약서에 일일이 서명했고, 시부모님 한국에 돌아가시는 날 비행기표 끊고 보안 검색 대까지 넘어 배웅하고, 온지 한 달도 안 되어서 자원봉사 한다고 아이 소풍 따라가고, Bush 공항 뿐만 아니라, Hobby 공항까지 운전해 가 보았다.

 

남들은 이런 나에게 남편과 똑 같은 소리를 한다. 언니 용감해. 아니, 언니 남편이 용감한가? 그런 남편이 있으니 언니가 이렇게 자신감 있고 , 항상 어디에서나 당당하잖아

난 용감한 것도 싫고 당당한 것도 싫다.

그러기까지 나는 남편에게 너무나 많은 상처를 받고 살아왔으니까.

이제는 그런 것들이 우리 부부의 사는 모습이라 어렵게 인정하고 있다.

 

그렇지만 때때로 속에서 뭔가 울컥 치밀어 올라 우울한 날에는 혼자서 울기도 한다.

독한 남편 덕에 시간이 흐르면서 어떤 새로운 것들에 직면했을 때도 이제 별로 당황하지 않는다. 지난 2년간의 세월의 흔적이리라.

 

남편에게 이렇게 냉정한 대접을 받으며 살았다는 걸 친정엄마가 안다면 아마도 분하고 억울해서 기절하기 일보직전 일 것 이다.

큰 딸인 내 앞에서는 어떤 사리 분별도 통하지 않고, 무조건 절대적으로 내 편이기 때문이다.

 

이세상 누구보다 장점도 많은 사람이고,또 난 남편을 존경하기도 하는데 글을 쓰다 보니 남편 성토의 장으로 바뀌어 버렸다.

 

언젠가 예쁜 짓을 많이 하면 칼럼 한 면을 채워 줄 것이다. 그렇지만 요원한 이야기다.

여하튼 이제 새로운 3년을 향해 힘차게 나가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