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남자에 대해

혼자서 기름을 넣다

김 정아 2003. 9. 20. 01:16

5월 21일 화요일

오늘은 혼자서 한 일이 많았다.

뉴 라이프에서 영어공부가 끝나고 커뮤니티 센터에서 다음달에 시작하는 영어 회화에 등록했다.

여기 오면서 남편과 같이 와야 하나? 했는데 대충 눈치로 카드 작성하고 등록비 90$내니 ok다 .

다음부턴 혼자서 뭐 하는 일에 너무 겁먹지 말아야겠다.

아이들 방학하면 거의 모든 강의나 강좌가 끝나 영어 공부 못하나 했는데 다행히 하는 곳이 있어 반가운 마음이 든다.

오는 길에 백화점에 들러 나연이 ,원석이 선생님 드릴 선물 하나씩을 사면서 참 많이 발전했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과연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쇼핑할 날이 있을까 했는데 이렇게 물건을 사서 나가는 마음이 뿌듯하기만 하다.

하긴 말 할 일이 별로 없긴 하다.

돈만 주고 영수증만 받아 나오면 그만이니까.

오늘로 여기 온 지 꼭 세 달 되는 날이다.

혼자서 시장도 볼 수 있게 되었고 아이들 학교 가는 것도 겁나지 않고 성당이나 월 Mart도 혼자서 운전하고 갈 수 있고.

도서관에 가서 책도 빌려다 볼 수 있게 되고

그런데 환율은 언제쯤 안 따지게 될지 모르겠다.

아이들 막 입는 셔츠 하나 사는데도 20$.

왜 이렇게 비싸? 우리 돈으로 2만 6천 원?

막대 아이스크림 하나에도 1$50센트 .그럼 우리 돈으로 거의 2000원?

피아노 레슨 하루 60분에 30불. 30분에 15불.

한국은 한 달 일주일에 5일 가면서 7만원쯤 하나?

그러고 보면 한국처럼 물가 싼 곳도 없는 것 같다.

그러니까 일본 사람들은 여기 사는 게 너무 좋다고 한다.

상대적으로 일본보다 싸니까.

환율 따지느라 마켓에서도 물건을 제대로 못 산다.

집었다 놓았다 여러 번 하다가 간신히 사 가지고 온다.

남편은 그런 나를 구박한다.

한국보다 물가 비싼 것 다 따져서 월급 받는데 왜 그러냐고.

우리 가족 충분히 입고 충분히 먹을 수 있게 돈 받으니까 그런 걱정하지 말라고 하는데

시간이 지나야 될 것 같다.

정말 환율 따지면 스트레스 받고 먹을 것도 못 먹고 입을 것도 못 입고 사는데. 아직 안 고쳐진다.

그리고 이제는 잔돈도 계산할 수 있다.

예전에는 손바닥에 잔돈을 가득 올려놓고 계산원에게 집어 가라고 했는데 이제는 내가 세서 준다.

1센트, 5센트, 원 다임(10센트), 쿼터 달러(25센트), 크기와 돈의 가치가 일치되지 않아 한참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이제는 기름도 혼자 넣을 수 있게 되었다.

우리 남편 나 스트레스 주는 데는 정말 일가견이 있다.

주유하는 것 한번 가르쳐 주더니 나한테 하라고 한다.

내가 글씨를 읽을 줄 아나 전구 하나 갈아 끼우지도 못하는 나한테 기름까지 혼자 넣으라니 너무 화가 났다.

세 달 동안 주유소도 꽤 많이 다녀 봤지만 모두 셀프다.

한국처럼 주유하는 사람이 있는 곳은 단 한군데도 없다.

하긴 기름 넣어 주는 사람이 있어도 말이 안 통해서 힘들긴 마찬가지겠다.

다른 사람은 일년 넘게 살아도 지금까지 자기가 한번도 안 넣어 봤다는데 ...

차 기름 없으니 오늘은 차를 바꿔 쓰자고 했더니 식탁 위에 카드 한 장 놓더니 그냥 나가 버린다.

도대체 날 더러 어쩌라고?

내가 무슨 천재냐?

한번 가르쳐 준다고 다 알게?

버티어 볼까? 시도해 볼까?

카드까지 받았는데 그냥 있으면 그 성질에 또 한마디 할 거고 그러면 어쩌고 저쩌고 하다가 서로 다투게 될 것 같다.

밥이 되나 죽이 되나 한 번 해보자.

아이들 학교 데려다주고 오는 길에 갈까 했는데 아무래도 용기가 안 난다.

아이들 오면 원석이한테라도 같이 가자고 해야지 하고 집에 왔는데 기분이 나쁘다.

내가 나쁜 짓 하는 것도 아니고 내 돈 내고 기름 넣겠다는데 뭐가 겁나?

다시 차를 몰고 나가서 shell 주유소 앞에 섰다.

숨을 들이쉬고 주유구를 열고 카드를 집어넣고 그 다음 노즐을 어쩌고 하라는데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몇 번을 시도해도 글자판에는 똑같은 메시지만 뜬다.

할 수 없이 옆에 있는 멕시칸에게 도와 달라고 했다.

그 멕시칸이 노즐을 위로 올리니 금방 해결이 되었고 그 다음 내가 원하는 갤런만큼 넣고 영수증 받으니 끝이었다.

아! 이렇게 쉬운걸 너무 겁먹었네.

차라리 남편에게 고맙다는 생각까지 든다.

날 빨리 적응시키려고 그랬나?

이제 영어만 조금 된다면 좋겠지만 그거야 시간이 많이 흘러야겠지?

안되면 또 어떠랴?

내가 이 땅에서 영원히 살 것도 아니고 영어 선생님을 할 것도 아니고 아이들 선생님과 조금만 의사소통이 된다면 그것으로도 충분히 만족하겠다.


'내 남자에 대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리 집 차고는 캠핑장  (0) 2003.12.10
총영사관 관저에서의 송년회  (0) 2003.12.08
샌드위치 가게에서 일을 하라고?  (0) 2003.09.13
남편은 요리중.  (0) 2003.06.20
이별은 항상 아쉽다.  (0) 2003.06.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