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미국적인..

연필깎는 칼이 흉기인가요?

김 정아 2003. 10. 30. 07:10

10월 23일 목요일

오늘 제이왕(상하이 출신으로 중국어는 물론 영어와 일어에 능통하다)은 교실에 들어오자마자 나에게 어제 신문 보았느냐고 먼저 물었다.

안 봤다고 했더니 제이왕은 어제 신문이며 T.V에 나왔다는 사건 이야기를 자세히 해 주었다.

우리 원석이가 다니는 Mcmean Junior High School에 8학년에 재학중인 한 한국 여학생이 있다.

정확히 말하면 그 여학생의 아버지는 미국인이고, 어머니는 한국인이다.

그 어머니가 한국에 갔다 오면서 딸에게 줄 학용품을 사 왔다.

한국 학용품은 여기 아이들 눈을 빙빙 돌게 할 만큼 예쁘고 세련된 디자인이어서 누구나 갖고 싶어한다.

그 엄마도 오랫동안 여기 살다가 한국에서 본 학용품들이 너무 예뻐 딸 갖다 주고 싶은 마음에 여러 가지를 사 왔을 것이다.

문제의 발단이 된 것이 칼이었다.

종이를 자르거나 연필을 깎을 때 다용도로 학교에서 사용하는 학용품이다.

이 여학생이 이 칼을 가지고 학교에 갔다가 무심코 자기 책상 위에 그 칼을 꺼내 놓았는데 선생님이 보고 신고를 한 것이다.

학용품이 아니라 남을 헤칠 수 있는 무기로 생각했기 때문이고 그런 칼을 처음 보았을 것이다.

여기는 교실마다 전동 연필깎이가 설치되어 있기 때문에 연필 깎을 칼은 필요하지 않다.

그 여학생은 남들이 알아주는 모범생이었고 8학년의 학생회장을 맡고 있었는데 그 직책까지 박탈당하고 7일간 등교 정지 처분을 받은 것이다. 우리로 말하면 정학이다.

한국과 달리 이런 처벌을 받으면 기록이 고등학교를 가고 대학을 갈 때가지도 따라 다니기 때문에 일생을 살면서 엄청난 멍에가 된다.

그 미국인 아버지는 무기가 아니라 한국에서 사용하는 학용품이기 때문에 죄가 될 수 없다며 학교를 상대로 법정 소송에 들어갔다.

한마디로 ‘문화 충돌’을 일으킨 것이다.

이 땅에 살면서 나도 크고 작은 문화 차이에 부딪힌다.

미국인이 있을 때 식탁 위에 두루마리 화장지를 올려 놓으면 안 된다든지, 경찰에 심문을 당했을 때 절대 차문을 열고 나가서는 안 된다든지 등등 우리와 다른 문화 때문에 가끔 당황한다.

이 문화적 충돌이 법정에서 어떻게 판결이 날지 모르겠지만 평소 ‘good student’였던 그 여학생에게 너그러운 판결이 나길 바라며 한인 사회에서 어떤 탄원서라도 제출해야 하지 않을까 혼자 생각해 본다.


그 신문을 보고 남편의 미국 친구가 전화를 걸어 그 칼 가지고 있으면 보여 달라고 해 찾아 보았으나 어디로 갔는지 찾을 수 가 없었다.

난 아이들을 앉혀 놓고 자세한 이야기를 해 주어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