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미국적인..

미국은 소비자 지상주의의 나라.

김 정아 2003. 6. 19. 04:18

6월 16일 월요일

남편은 앨라바마 출장이다.

사람들이 내게 미국 생활이 어떠냐고 물으면 내가 쉴 수 있어 행복하고 남편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다고 대답하곤 한다.

한국에서 남편의 존재란 항상 곁에 있는 사람, 가끔 출장이라도 가면 홀가분해서 좋고, 서로 피곤해서 상대에 대한 배려가 부족해 가끔 다투기도 하면서 살아가는, 그냥 특별할 것 없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러나 여기 와서 남편의 존재란 하루만 옆에 없어도 불안하고 우리가족에게 가장 중요한 인물이 되어버렸다.

전기요금 전화요금 등 공과금 납부에서부터 병원 가는 일, 학교에서의 상담 등 남편이 없으면 한가지도 제대로 되는 게 없다.

그래서 남편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때로는 "나도 한국에 있을 때 아이들 키우는 것, 집안 살림하는 것, 돈 버는 것, 나도 다 했어. 여기서 그런 것 좀 한다고 생색내지마" 하고 억지를 부리기도 한다.

그리고 내가 시간 여유가 있으니 남편의 짜증도 가끔 아무 소리 안하고 받아 줄 수 있게 되었고 ,늘어가는 남편의 주름살도 애틋한 마음으로 봐 줄 수 있게 되었고 ,남편이 힘들어하고 걱정할 때 진심으로 같이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출장이라도 가게 되면 자꾸 노파심이 생긴다.

비행기는 잘 타고 있나? 비행기 고장은 없겠지?

전화가 없으면 또 걱정이 되고.

부모 형제 없는 이 먼 땅에서 내가 가장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의식의 전환이 이런 기회를 통해서 내게 와 주어 다행이다.




6월 17일 화요일
학교 공부가 끝나고 나니 조금씩 내리던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집에 가기 싫은 사람들이 모여서 점심이나 같이 하자고 해 쏟아지는 비를 뚫고 한국인이 개업했다는 국적 불명의 음식점에 갔다.

아마 중국 음식에 가깝다고 해야 옳은 것 같기도 하다.

각자 음식을 주문해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먹는데 갑자기 두두둑 하며 돌 씹히는 소리가 내게까지 들려 왔다.

유선씨가 돌을 씹었다.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하다 한국인의 가게이기 때문에 더욱더 그냥 있으면 안 된다는 의견을 모아 메니저에게 돌을 씹었다고 말했다.

두 명의 미국인 메니저가 나와 아주 미안한 얼굴로 음식을 다른 것으로 바꿔주겠다 하는데 유선씨는 더 먹고 싶은 생각이 없다고 말하자 잠시 후 현금을 그대로 돌려주며 음료수까지 서비스하며 미안하단 소리를 여러 번 하며 들어갔다.

소비자 지상 주의라 손님이 치과 가서 치료를 하며 배상을 요구하면 어쩔 수 없이 해주어야 되고 자칫 소송이라도 걸리면 큰일이기 때문에 돈 몇 불 아까워하지 않으며 환불해 주는 것이 일반적인 경우다.

맥도널드에서 어떤 할머니가 뜨거운 커피를 마시다 입이 데었는데 소송이 걸려 맥도널드에서 많은 배상을 해주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 이후로 맥도널드의 종이컵엔 뜨거우니 조심하라는 문구가 붙어있는 걸 눈으로 직접 확인하기도 했다.

이래서 선진국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나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