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미국적인..

휴스턴에 도착하여.

김 정아 2003. 8. 6. 00:24

2002. 2월 21일

L.A 해변 가에 가서 게를 먹었다.

한국의 2월 바닷가는 황량하지만 따뜻한 바람 불어오는 이곳의 해안은 또 다른 느낌이다.

너무나 아름답고 푸른 바닷물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어쩜 바닷물이 그렇게 맑고 깨끗한지 우리가 살 휴스턴에도 저런 바다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보았다.

해변 가에 돌아다니다 역시 나연이답게 파도에 빠져 옷이 젖었다.

그래도 아무 생각 없이 너무 좋아했다.

한국의 쌀쌀한 겨울 날씨에 비해 따뜻한 바람이 불어 이국의 정취를 만끽하게 해주었다.

비행기 시간에 맞춰 공항에 오니 화물용 가방이 안 잠겨져서 애를 먹었다.

드디어 모든 것을 수습하고 휴스턴 행 기내에 몸을 의지하고 잠깐 숨을 돌렸다.

앞으로 남편과 어떤 생활을 하게 될까?

한국에서처럼 아옹다옹하면서 거칠게 사는 모습은 아니어야 할 텐데...걱정이다.

여기서만은 내가 모든 걸 참자.

남편 말대로 도 닦으며 살면 우리도 다른 부부들처럼 예쁘게 살 수 있겠지?

네시간을 날아 비행기가 고도를 낮추니 타운 가에 불빛이 반짝이고 활주로에 미끄러져 내린다.

로스엔젤레스보다 2시간이 빠르다고 하더니 벌써 짙은 어둠이 깔렸다.

두달 먼저 이곳에 도착한 남편과 반갑게 재회를 하며안도의 한숨이 쉬어졌다.

고속도로를 진입해 한참을 가니 여기가 우리가 살 곳이라고 말해준다.

낮은 건물들, 넓은 대지, 우리 여기서 많은 것을 경험하며 많은 것을 느껴 다시 한국에 돌아갈 때는 새사람으로 가자

그리고 우리 여기서 행복하자


2002. 2. 22
무려 37년의 역사를 지닌 고색이 창연한 아파트에 짐 정리를 하고 내가 살아갈 집이라 생각하니 기분이 좋아졌다.

15층쯤 되는 아파트 일거라고 생각했는데 단 2층뿐이다.

아침에 창을 여니 아름드리 나무에 다람쥐가 오가며 재롱을 부리고 있다.

'아. 미국은 이런가 보구나 ' 신기함이 몰려 온다.

한국의 아파트 나이 37년이면 이미 고물 대접을 받아도 한참이며 재개발을 한다고 난리일터인데 이곳 사람들은 아무 생각 없이 잘 살고 있는 것 같다.

이제 꿈에 그리던 전업 주부가 되었으니 살림을 좀 잘 해 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2002. 2. 25
전임 지사장님 사모님과 가구들을 사러 갔다.

이곳에서 사신지가 오랜지라 여러 가지 도움을 많이 받았다.

가구점에 가서 난 기절 할 뻔했다.

우아하고 아름다운 가구들이 많이 있을 거라 지레 짐작하고 갔건만 한국에서는 거저 주어도 가져가지 않은을 것처럼 보이는 가구들만 진열 되어있다.

여기 눈에 맞추어서 살아야지 한국 생각하면 절대 가구 못 산다며 내 심정을 이해한다고 여러 번 말씀하셨다.

물론 아주 고가의 제품을 파는 곳에 가면 마음에 드는 것을 살수도 있겠지만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어 울며 겨자 먹기로 사 왔다.

그리고 모든 게 다 조립이었다.

책상 ,책꽂이, 침대, 식탁, 서랍장.

아니, 이건 또 뭐야?

무료 배달이 안 된다는 것이다.

참 이상한 나라도 다 있다.

작은 승용차에 다 싣고 오는데 이 나라가 생각보다 불편한 나라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미국은 좋은 게 많을 거라 생각한 나의 환상 하나가 여지없이 깨져 나갔다.

식탁과 의자들과 책장을 사서 돌아와 조립하고 나니 벌써 오랜 시간이 지났다.


나연:한국 나이로 일곱살이 된 저의 작은 아이입니다.
별명이 폭탄이랍니다. 산만하고 씩씩하고 너무 활동적이어서 탈인 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