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지만 큰 내 나라

산타페와 익스플로러.

김 정아 2003. 1. 4. 01:17

6월 30일 일요일

성당에서 예비신자 입교식을 했다.
마음은 전혀 아닌데 남편의 힘에 밀려 여기까지 온 것 같다.

신부님이 예비신자들 목에 기름을 발라주고 머리를 만져주며 강복을 해 주었다.

남편은 신부님이 머리를 만졌을 때 몸에서 강한 열이 올라오며 순간적으로 정신을 놓아 버릴 뻔한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마음 속으로 많이 교화를 받으며 하느님께 한 걸음씩 다가가는 것 같다.

빨리 세례를 받고 싶다고도 한다.

아이들은 그것과는 달리 성당 다녀 올 때마다 불만이 많다.

모두 한국인인데 왜 한국 차를 안 타느냐는 것이다.

아무리 둘러 봐도 일본차가 제일 많고 그 중에 포드나 미국 계열 차 다수와 한국 차는 그 많은 차 중에 열 대를 넘지 않는 것 같다.

그게 무지 불만인 아이들이 어떤 날은 "아저씨는 한국사람이면서 왜 일본차를 타요?"하고 직설적으로 물어서 옆에 있는 나를 무척 당황스럽게 했다.

아이들에게 국산품이 제일이라는 걸 너무 강조 했나보다.

하다 못해 이곳에서 한국의 크레파스나 색연필 같은 아이들 필기구 마저 얼마나 인기가 있는지 한국 땅에 있는 사람들은 모른다.

학교에 그런 것들을 가져가면 누구나 한번만 써보자며 부러워한다.

한국에서 사온 색연필을 작은 아이 반 모든 친구들에게 한 타스씩 선물했는데 아이들이 난리가 났다.

저마다 와서 고맙단 소리를 몇 번씩 하면서 다른 반에 가서 자랑을 하고 다녔다고 한다. 그리고 평소 아이가 쓰던 싸인펜까지 다른 눈으로 보며 그것도 써 보고 싶다고 했다고 한다.

그 날 우리 아이는 인기 '짱'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남편 출장 때 무려 다섯 박스를 더 사 가지고 왔다.

휴스턴 판 코리안 저널에서 한국에서는 겨울 연가의 배용준이 타던 익스플로러가 그렇게 인기라던데 그 차가 뭐가 그리 좋다고 그러는지 모르겠다.

한국의 산타페가 훨씬 멋지고 근사해 보이는데 우리는 그런 걸 모르고 차 뿐만 아니라 모든 외제를 너무 좋아한다.

남의 땅에 나와 있으니 우리의 단점도 잘 보인다.

누가 내게 거저 익스플로러를 준다고 해도 이곳에서만은 난 흔들림 없이 거절할 수 있다.

달리는 도로 자체가 거대한 자동차 전시장인 이곳에서 내가 한국 차를 몰고 다니면 그 자체로 한국의 광고가 되고 한국의 자존심을 높이는 것이며 한국 차에 대한 관심을 한 번이라도 더 유발시키게 할 것인데 내가 외제차를 몰고 다니면서 남의 광고를 하겠는가?

언젠가 주유소에 갔는데 내 앞에서 오래된 현대 액센트가 기름을 넣고 있었다.

멕시칸으로 보이는 사람이 내 차를 보고, 나를 보더니 빙긋 웃는다.

아마 자기랑 같은 회사 차를 보게 되어서였을 것이다.

그러더니 나한테 와서 이 차 좋으냐고 물었다.

많고 많은 말 중에 내가 할 수 있는 말이 이 차 매우 조용하다는 말 밖에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리고 매우 매우 좋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랬더니 자기 액센트도 좋다고 했다.

아마 다음 차도 현대차를 사지 않을까 생각한다.

어쩌면 내가 오늘 산타페 한 대 팔았을지도 모른다.

그 사람이 나의 산타페를 아주 흐뭇한 미소를 띠고 보며 돌아갔으니까.

거리를 질주하는 한국 차를 보면 처음엔 한국사람인가? 하고 쳐다보면 다들 머리색 노란 외국인이다.

한국 차를 보면 기분이 좋아지지만 운전자가 동양인인 경우는 거의 못 보았다.

아직은 한국 차가 값이 싸다는 인상으로 남아 있지만 우리가 많이 아껴주고 사랑해 준다면 언제든 그 벽은 뛰어 넘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집에 돌아와 아이들에게 다시 말했다.

사람마다 가치 기준이라는 게 다 다르다.

일본차를 타고 미국 차를 타는 건 사람마다 다 생각이 다르기 때문이다.

한국 차는 팔 때 값이 덜 나가고 미국 차나 일본차는 비싸긴 해도 더 튼튼하기 때문에 아마 튼튼한 쪽에 더 중점을 두었기 때문일 것이다.

일본차나 미국 차를 탄다고 해서 그 사람들이 한국을 생각하지 않는 건 아니다.

다른 방법으로 애국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엄마랑 아빠는 우리 물건 하나라도 더 팔아주는 게 애국이란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 차를 산 것이고 아마 앞으로도 한국 것을 이용할 것이다.

그러니 앞으로 "왜 미국 차를 타요? 일본차를 타요?" 이렇게 묻는 건 실례다
라면서 한참을 이야기 해주었다.

우리 아이들이 가끔 나를 당황하게 해도 한국인으로서의 자부심을 느끼게 교육하는 것은 절대로 멈추면 안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