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지만 큰 내 나라

휴스턴에 온 김덕수 사물놀이 공연장을 찾아서.

김 정아 2003. 4. 16. 12:06

2월 10일 화요일

미주 사회 이민 백주년을 맞는 기념으로 한국에서 온 김덕수 사물놀이 공연에 갔다.

휴스턴의 한국인들이 다 모인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모여 공연을 기다렸다.

한국에서라면 사물놀이에 별 관심이 없었을 것이고 그렇게 멀리 갈 만한 열정도 없었을 것이지만 고국의 정을 느껴보고 싶었다.

시간이 되어 양국(兩國)의 국가를 부르는 것으로 막이 올랐다.

애국가를 부르는데 가슴이 먹먹해지면서 눈물 한 방울이 눈가에 맺혔다.

얼마나 오랜만에 가슴에서 우러나와 부르는 애국가이던가?

운동장 조회에서 부르던 애국가는 그저 지나가는 요식 행위였지만 정말이지 오늘은 내 나라를 생각하며 ,내 나라를 위하여 온 정성을 대해 마음으로 불렀다.

그런데 우리 일 학년 나연이는 애국가 부를 땐 가만히 있더니 미국 국가를 부를 땐 힘차게 따라 불렀다.
정말 기가 막히고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누구를 탓하랴!

애국가를 못 가르친 내 잘못이지.

일 년간 학교를 다니면서 미국국가는 저절로 외웠겠지만 애국가는 어린이집에 다닐 때나 좀 불렀을까?

그것도 일년이나 안 불러 봤으니 알았더라도 다 잊어버렸을 것이다.

여기 오래 산 교포들의 아이들이 한국말 못한다고 흉볼 것도 없다.

일 년밖에 안 된 내 아이들이 애국가를 못 부르니 나도 할 말이 없다.

8명의 남자들이 너무나 신명나게 가락을 울리고 상모를 돌리는데 그만 넋이 나가 버릴 뻔했다.

오페라니 뮤지컬 같은 것은 아무리 훌륭한 작품이라 해도 난 그다지 감동이 오지 않는데 왜 이리 몸 속 깊은 곳에서 전율이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한국인의 피가 흐르는 까닭이겠지!

찬조 출연자의 사랑가도 일품이었다.

마지막 공연이 끝나자마자 사람들이 모두 일어나는 것이다.

'이 사람들이 왜 이렇게 예의가 없어! 뭐가 그리 급해서 끝나자마자 가려고 일어서?'하며 마음속으로 불평을 했다.

그러나 그들이 일어나서 나가는 게 아니었다.

일어나서 박수를 치는 것이었다. 이른바 기립박수라는 것을.

너도나도 모두 일어나 함성을 울리며 우레 같은 박수를 쳐주며 그 먼 타국 땅 까지 찾아 와 준 그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있었다.

우리 것을 마음껏 느끼고, 한국인의 피를 느끼고 돌아오는 길은 마음이 많이 푸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