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남자에 대해

10년만에 앞치마를 꺼내 입고

김 정아 2022. 1. 17. 10:47

2022년 1월 16일 일요일

20대 때부터 내 소원은 부엌 없는 집에서 사는 것이었다.

 

아이들이 대학을 가고 가게를 시작하면서는 그 소원을 어느 정도는 이루고 살았다.

 

아이들을 위해 밥을 할 일이 없어졌고 남편은 거의 밖에서 식사를 해결했고 같이 있는 토요일, 일요일의 밥당번은 남편이었다. 그래서 남편 손에 밥을 얻어 먹고 사는 일이 많아졌다.

 

청소 아줌마가 청소를 하고 가고 나서도 우리 집 부엌 싱크대나 개스랜지 주위에는 기름 튀는 일도 없고 요리하는 흔적이 거의 남지 않을만큼 깨끗하게 유지되고 있어 나름 기분 좋게 지내고 있었다.

 

그러나 13일에 남편이 휴스턴으로 돌아오고 나서의 내 많은 시간은 부엌에서 보내고 있다.

 

펜츄리 깊은 곳에 박혀 있던 앞치마를 꺼내 입고 부엌에서 서성거리고 있다.

 

방사선 치료를 받은 것도 아닌데 남편의 입맛은 본인도 어찌할 바를 모를 만큼 까다로와 지고 있었다.

 

미역국이 먹고 싶다고 해 처음엔 재첩 국물에 끓였더니 비린내가 너무 역하다고 못 먹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음엔 쇠고기 미역국을 끓이며 후추를 조금 넣었더니 후추 냄새가 너무 나서 못 먹겠다고 하고, 다음에는 후추를 빼고 다시 끓였는데 이번에는 그냥 맛이 없다며 세번 끓인 미역국을 끝내 한 입도 먹지 못했다.

 

수시로 먹어야 하니 간식도 이것 저것 챙겨야 해서 하루에 한 번씩 마트에 가야 한다.

 

한국 마켓, 미국마켓 ,멕시칸 마켓을 다녀도 딱히 남편 입맛에 맞는 것을 찾을 수가 없고 사무실에 출근할 때 도시락도 싸야 하니 내 정신은 온통 남편의 식사에 가 있다.

 

새 모이만큼 먹는 밥을 끼니 때마다 새로운 반찬을 하느라 머리카락이 뽑힐 만큼 나도 힘이 들지만 또 이런 과정없이는 정상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친구가 그랬다.

 

사람마다 자기가 해야 할 몫이 있는데 난 젊었을 때 안 했기 때문에 나이 들어서라도 해야 한다고.

그 말이 위로가 되었다.

 

내가 해 야 할 몫이라면 이제라도 정성껏 해야지!

 

 

남편이 아프기 전 저희 집 냉장고 입니다.

제일 윗칸 왼쪽은 남편이 한 깻잎이고, 그 옆은 1년도 더 전에 친구가 해 준 석박지입니다.

 

이렇게 헐렁하던 냉장고가 이제는 들어갈 자리가 없을만큼 꽉 차 있어요.

 

이게 남편 입맛에 맞을까 ? 저게 맞을까? 하며 하루에 한 번씩 마트에 가서 사다보니 정말 처치 곤란일 만큼 쌓여 있습니다. 

쌓인 냉장고는 저를 우울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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