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미국적인..

머리카락이 쭈삣쭈삣 선 날

김 정아 2011. 2. 6. 06:49

2011년 2월 4일 금요일

원석이를 보러 간다고 오래전부터 약속을 잡아 놓아서 오늘은 Austin엘 가는 날이다.

 

그런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1년에 한 번 오는 눈이 오늘 새벽에 온다고 했었다.

눈이 없는 지역에 살다 보니 휴스턴 사람들에겐 낭만의 대상이면서 운전자들에겐 공포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안전의식이 투철한 미국 사람들은 어제 정오부터 회사문을 닫고 일찍 귀가했다.

 

오늘도 거의 모든 회사들이 문을 닫고 학교도 오늘 하루 휴교에 들어갔고 방송에선 오늘 운전이 위험한 상황이니 나오지 말기를 권고하고 있었다.

아침에 5시에 일어나 준비를 다 마치고 6시에  운전을 하려고 나가니 눈이 어디에 쌓이지는 않았고 날이 추우니 어제 밤에 내린 진눈깨비가 오늘 얼어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위험한 상황인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나연이도 오늘 휴교여서 나연이까지 대동하고 룰루랄라 고속도로에 진입했는데 왠걸 얼음이 많이 얼었는지 차가 지 맘대로 1차선에서 4차선까지 사선으로 미끄러져 가는 것이다.

다행히 앞뒤로 차가 없어 위기 상황을 모면했는데 아들 보러 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상황은 절대 아닌 것 같아 집으로 돌아가자고 했는데 남편은 무대뽀 정신을 발휘해 들은 척도 안 하는 것이다.

다리를 지날 때마다 상황은 더 위험해 남편은 운전을 하면서 나한테는 묵주기도를 하라고 해 눈을 감고 묵주 기도 20단을 바쳤다.

나연이는 위험상황을 느끼지 못하고 뒤에서 평화롭게 자고 있는데 저 평화로운 얼굴을 집에 돌아가서도 볼 수 있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오스틴 쪽으로 갈 수록 상황은 더 악화되어 고속도로에 널브러져 있는 차가 한 두대가 아니었다.

가드레일을 들이받고 잔디밭에 엎어져 있는 차, 역 주행 방향으로 틀어져 있는 차, 아이들이 타고 있는 차가 큰 트럭 사이에 끼어 들어가  있기도 하고, 화물트럭이 반쪽이 가위로 자른 듯 한쪽만 보이고 다른 쪽은 어디에 있는지 보이지도 않고, 물건을 가득 실은 차의 상품들이 고속도로에 널브러져 있고 곳곳에 경찰차들이 와 있지만 상황이 도저히 정리가 안 되고 있었다.

그런 모습들을 바라보자니 정말 우리에게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은 것을 감사하면서도 과연 무사히 집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한 가득이었다.

 

휴스턴 근교에는 그리 많지 않던 눈이 어스틴 쪽으로 가면서 많아지긴 했지만 대도시 주변의 고속도로는 괜찮을 거라 생각하고 어스틴 공항 주변에 들어섰는데도 여전히 제설 작업은 하나도 안 되어 있었다.

2시간 10분이면 도착하는 거리를 4시간 30분이 넘어 도착해 어스틴 시내 한복판으로 들어섰는데 우리의 기대를 저버리고 도로 곳곳은 얼음판이었다.

빨간불에 정지했다가 신호가 바뀌어 움직이려는데 엑셀을 밟아도 차가 안 나가 뒷사람이 밀어주어서 간신히 움직이기도 했다.

 

1미리도 채 안되는 눈에 텍사스 남부 지역은 완전 도시가 마비가 되어 버렸다.

워낙 눈이 없는 지역이긴 하지만 대도시 한 가운데 제설작업이 안 되어 있다는 것이 놀랍기만 했고 선진국의 기준이 무엇인지 잠시 헷갈렸다.

그런 위험상황에도 아들을 보겠다고 운전을 하고 온 우리도 참 대책이 없긴했다.

주님의 도움으로 아무 사고 없이 다시 휴스턴으로 돌아오게 됨을 감사하고 무척 길고 길었던 하루였다.

*휴스턴을 지나 서쪽으로 운전을 하는데 눈이 이만큼 쌓여 있습니다.

 

*차들이 거의 없었는데 길게 늘어선 것이 사고가 크게 났나 생각하고 옆 작은 길로 내려왔습니다.

 

swift라는 트럭의 반이 갈라져 나갔고 큰 화물트럭도 반이 껶여 있습니다.

경찰차가 와 있지만 아무 도움을 줄 수도 없었고요. 트럭 밑에 승용차 한 대가 끼어 있는 모습도 보입니다.

대형 마켓인 코스코 트력은 역주행 방향으로 서 있고 물건을 도로에 다 떨어져 있습니다.

결국 고속도로는 닫혀 버렸고 옆 길로 운전해 가야 했습니다.

 

어스틴으로 가는 지방 국도로 들어서니 눈은 조금 더 쌓여 있습니다. 이  길에도 수 없이 많은 차들이 사고를 당하고 아무렇게나 나뒹구는 차들이 많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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