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지만 큰 내 나라

한국 영화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을 보고.

김 정아 2010. 6. 12. 11:40

2010년 6월 11일 금요일

어제 한국 식당에 가서 저녁을 먹고 온 원석이가 AMC 어느 극장에서 한국 영화를 상영하는데 은영이 누나(우리 집 유학생)랑 같이 가기로 했는데 엄마도 같이 가자는 것이다.

난 그 영화 제목이 하도 이상해서 저 영화가 도대체 무슨 영화일까? 맞춤법을 저렇게 꼭 틀리게 써야하나?관심을 받으려고 저렇게 썼나? 하는 생각을 이전에 했었다.

무슨 내용인지는 몰랐지만 하여튼 사전에서 찾을 수도 없는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이라는 한국 영화가 들어왔다니 대한민국의 국민된 의무감에 보아야 할 것 같아서 아이들과 같이 갔다.


표를 끊고 들어가 보니 극장안 어디에서도 포스터 한 장 붙어 있지 않았다.

오늘이 개봉일인데 극장 안에 들아가보니 세명이 보고 있었고, 우리 셋과 나중에 미국 아저씨 한 사람이 들어와서 7명이서 보게 되었다.

예전에 개봉일에 아이언맨 2를 보러 갔을 때는 원하는 시간의 영화표도 못 했고 극장 밖에 까지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는데 개봉 영화를 7명이 본다는 게 참 마음이 쓸쓸하기도 했다.


여하튼 영화의 시대 배경은 조선 임진왜란 당시 동인과 서인으로 나뉘어 당파 싸움을 일삼는 한심하기 짝이 없는 우리 정치사가 그대로 반영되어 있었다.

그러고 보니 지금의 정치도 조선시대보다 더 나아진 것은 없어 보인다.

썪어 부패된 정치를 개혁하고자 대동이라는 단체를 조직해 기존 정치인들을 제거하고 한양으로 올라가지만 그들 역시 민생보다는 자신들이 왕권을 갖고자 하는 탐욕의 일환이었다.

뒤에서는 왜군들이 밀고 들어와 그 발아래 짓밟힌 백성들의 신음소리는 안중에도 없는 똑같이 부패된 자들의 이야기였다.


장님 황처사로 나오는 황정민,  대동의 우두머리인 차승원의 연기도 볼만했고,  황처사의 제자로 불릴 수 있는 견주와 황처사의 코믹하게 그려지는 연기 부분 부분도 참 재미가 있었다.

단풍 들고 갈대가 우거진 가을의 배경도 참 멋있었다.


그런데 이 영화가 어딘지 드라마 추노와도 닮아 보인다.

천민들이 주인이 될 날을 기다리며 양반을 죽이고 나중엔 임금까지 죽이고 새로운 세상을 열겠다는 추노와 부패한 정치인들을 죽이고 새 세상을 살겠다는 농민들의 의지가 결국은 좀 더 힘있는 사람에게 똑같이 버림 받는 삶이 말이다.

추노에서는 남사당 출신의 설화가 처음부터 끝까지 쌩뚱맞다 싶었는데 이 영화에서는 굳이 한지혜라는 기생 '백지'가 나왔어야 싶을만큼 또 엉뚱하다는 생각이다.


이 영화의 감독 이준익의 작품에 '왕의 남자'가 있다(맞나요?)

그 왕의 남자에 나왔던 세트가 그대로 이 영화에 재현되었다.

그리고 그 세트가 있던 부안 영상 센터라는 곳에 2년 전에 다녀왔는데 눈에 익은 세트라 더 친근감이 있게 보았다.


아무리 작품이 좋지 않고 내용의 구성이 엉망이어도 이 미국 땅에서 한국 영화를 보는 감동은 보통이 아니다.

특히나 영화가 끝나고 자막이 한글로 올라갈 때는 눈시울이 뜨거워지기도 한다.

오늘도 역시 영화가 끝나고 나니 감동이 밀려온다.

미국 땅에서 한국 영화를 자주 접했으면 참 좋겠다.


*한국 분들, 많이 좀 가주세요. 이렇게 미국 땅에서 한국 영화가 상영된다는 것이 정말 뿌듯하잖아요.

이 영화가 상영되는 곳의 주소는 2949 Dunvale Houston, TX


AMC가 큰 영화 체인점인데 다른 곳에는 없고 이곳에서만 상영하더군요.

예전에 '태극기 휘날리며'도 여기에서 했었습니다.


*미국판으로는 'blades of blood'로 나왔네요. 극장안에서는 포스터를 찾을 수가 없었고 웹사이트에도 포스터가 없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