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아이의 미국생활

호수에 빠진 날

김 정아 2008. 4. 28. 23:49

2008년 4월 26일 금요일

요즘 나연이는 학교가 끝나고 집에 돌아와 숙제를 하고 친구들과 호숫가로 놀러가는 일이 잦아졌다.

집에서 큰 길을 건너서 가야 되고 혼자 보내는 것이 불안해 가지 말라고 해도 영 내 말을 안 듣는다.

거의 일주일간 집에 와서 친구들과 놀러 나가는 것에 아주 재미가 붙어 버렸다.

오늘도 간다고 하기에 30분만 놀고 들어오라고 하고 보냈다.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에 나가보니 나연이는 온몸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며 나를 보더니 대성통곡을 하며 운다.

혹시나 해서 “ 너 호수에 빠졌니?” 했더니 말도 못하고 고개만 끄덕거리며 눈물만 흘린다.

 

호수 가장자리 쯤에 이쪽 끝에서 저쪽 끝에까지 징검다리가 놓여 있는데 사람이 건너기 위한 것이 아니고 뭔가 응급조치라든지,환경 관리를 하기 위해서 놓여진 것 같다.

징검다리 양쪽의 물 깊이도 차이가 나서 한쪽은 더 얕고 다른쪽은 더 깊으며 물도 더 더러운 편이다.

그 징검다리를 건너는 사람은 한 번도 본 적이 없고 비가 조금 오면 그 징검다리는 물 속에 가라 앉아 버린다.

겁 없는 아이들이 그 징검다리를 건너며 노는 모양이었다.

 

오늘도 네 명의 여자아이들이 양 팔을 펴고 그 좁은 곳을 건너는데 갑자기 돌풍이 불어 나연이는 균형을 잃고 그 호수에 푹 빠져 버린 것이다.

다른 여자 아이들이 바닥에 엎드려 아이에게 손을 건네 주어 바로 나오긴 했나 본데 그 공포감이 극에 달한 것 같다.

빠지는 순간 공포 영화가 생각나며 종아리 아래로 뭔가가 훑고 지나간 섬뜩한 느낌, 생일 선물로 졸라서 산 휴대폰도 물 속에 빠져 버리고, 거꾸로 박히면서 안경도 물 속에 잃어 버리고 나왔다.

그러니 아이는 공포도 공포지만 애지중지하던 휴대폰도 못 쓰게 되었고, 맞춘지 얼마 안 된 안경까지 잃어 버리고 나오니 속도 상해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그나마 수영이라도 할 수 있어 살아 나왔으니 다행이다.

 

잠자는 시간에 무서워서 혼자 못 자겠다고 해서 남편을 나연이 방으로 보내고 아이를 안방에서 재웠다.

시간이 가면서 아이의 공포심은 가라앉았는데 난 내일부터 뒷치닥거리로 귀찮게 되었다.

물에 빠진 휴대폰은 어떻게 해도 다시 쓸 수 없으니 하나를 사 주어야하나?

아~휴, 안경은 전의 것을 계속 쓰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다시 맞추어 주어야하나?

아이는 나에게 고민거리를 가득 안겨 주고 세상 모르게 잠에 빠져 있다.

 

*동네 호수 입니다.

 

*저 징검다리 한 가운데서 물에 빠졌고요.

 

'두 아이의 미국생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빠 허리가 휜다, 얘들아!  (0) 2008.05.03
아들아, 엄마 힘들다.  (0) 2008.04.30
12번째 생일  (0) 2008.03.23
이제 다시 행복한 아이가 되길 바란다.  (0) 2008.03.18
아이에게 상처가 된 날.  (0) 2008.03.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