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4월 28일 월요일
두 녀석들이 번갈아 가면서 나를 아주 힘들게 한다.
오늘은 큰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다녀왔다.
어제 아침 성당에 가야 할 시간이 되었는데도 일어날 생각을 안하고 자고 있기에 더 깨우기도 귀찮아 나연이와 둘이서만 다녀왔다.
성당의 미사가 끝나고 집에 돌아왔는데도 이녀석은 아직도 비몽사몽간에 침대에서 나오지를 못하고 있었다.
남편의 출장 준비로 옷 몇 가지도 사야 하고, 나연이 치어리더 신발도 사야 되어서 다시 쇼핑몰에 가려고 차를 타고 나오는데 큰 녀석을 데리고 가는 것이 맞는 것 같지만 잠만 자고 있는 녀석이 한심하고 얄미워서 그냥 나왔다.
이녀석이 얼마나 외모에 신경을 쓰는지 모른다.
남편이 아주 비싼 청바지 하나를 사다 주었는데 그 바지에 맞는 운동화를 사야 한다고 한참 전부터 쇼핑몰에 가자고 조르는 것을 미루고만 있었다.
그런데 하는 꼴이 맘에 안들어 그냥 가자니 마음이 좀 찜찜하긴 했다.
이것 저것 물건을 사서 집에 돌아왔는데 이 녀석이 자기만 안 데리고 갔다고 화를 내며 지 방으로 들어갔는데 침대에 누워 팔을 뻗으면서 자기도 모르게 유리창을 친 모양이었다.
‘악’ 소리를 내며 뛰어 나오는데 손에서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
어찌할 바를 모르다 일단 지혈을 해야 할 것 같아 깨끗한 수건으로 한참을 꽉 잡고 있으니 피가 멈추긴 했다.
세 부분이 찢어졌는데 손등에는 상처가 꽤 깊어 보였다.
소독하고 약을 잘 바르면 그대로 아물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몇 바늘을 꿰매야 될 것 같긴 했는데 일요일이라 갈 병원도 마땅치 않은데 시간이 갈 수록 아픔도 덜하고 피도 안 나서 안심을 하고 있었다.
오늘 아침에도 소독을 하고 약을 바르고 붕대로 손을 싸 매주고 등교를 시켰다.
학교에 가서 nurse에게 보이니 병원에 가 보라고 했다고 한다.
아물어도 상처가 심할 것 같긴 해서 한국 병원에 예약도 없이 그냥 데려갔다.
마침 환자가 없어 기다리지 않고 바로 의사 선생님을 만날 수 있었다.
선생님이 아이를 보시더니 몇 바늘을 꿰매야 할 것 같다고 하는데 미국의 그 복잡한 절차를 생각하니 마음이 쿵 내려 앉았다.
당연히 이 작은 병원에서는 안 될테니 병원을 소개 받고 또 며칠을 기다려야 꿰맬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는데 선생님은 그 자리에서 본인이 직접 하시겠다고 하신다.
그러더니 아이를 방에 데리고 가서 이것 저것 준비를 하시고 마취 주사를 놓고 꿰매기 시작했다.
아이는 아프다고 몇 마디 비명을 지르긴 했지만 선생님은 아주 능숙하신 솜씨로 30분 쯤 걸려 다 끝마쳤다.
아이가 불행을 당하긴 했지만 그나마 이렇게 쉽게 그 자리에서 봉합수술을 할 수 있어 또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의료보험이 있어도 꽤 많은 비용이 나오겠다 싶어 살짝 긴장을 했는데 그것도 다 커버가 되어서 copay 20불만 냈다.
아이를 키우면서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이렇게 복병을 만난다.
어려서도 큰 말썽 안 부리고 목소리 조금만 높여도 바로 부모 말을 듣던 순하디 순한 아이였다.
지금도 사춘기 한 가운데서 이 정도로 자라 준 것만도 감사해야 할 일인 것 같다.
“너 일요일에 성당 안 가고 게으름 부린 벌 받는 거야. 앞으로 성당은 꼭 나가! 알았지?”하니 아이는 그저 민망해 웃기만 한다.
이 정도로 끝나게 되어서 참 감사한 일이다.
그리고 솜씨 좋은 한국 의사 선생님이 있다는 것도 감사한 일이다.
오늘 잠 자기 전에 감사기도를 올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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