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아이의 미국생활

이제 다시 행복한 아이가 되길 바란다.

김 정아 2008. 3. 18. 22:05

2008년 3월 15일 토요일

나연이는 어제 밤 늦게까지 치어리더 떨어진 것이 너무 속상해 울다가 울다가 잘 시간이 되어도 혼자 잠들지 못하겠다고 안방으로 와서 셋이 같이 자는데 자다가도 잠꼬대를 하는지 큰소리를 질렀다가 울다가 했다.

난 몇 번이나 깨서 괜찮다고 토닥여 주는데 잠결에도 마음이 아팠다.

 

나연이가 이렇게 속상해 하는 이유는 친한 친구 때문이기도 하다.

나연이가 치어리더를 준비한다니까 장난으로 시작했던 아이가 ,준비도 한 달 밖에 안 했던 Serah가 덜컥 붙어 버린 것이다.

나도 나연이도 세라가 될 것이라는 생각은 별로 한 적이 없었다.

어려서부터 치열하게 준비하는 아이들이 많은데 이제 한 달 된 아이가 붙을 거라는 생각은 안 했는데 세라가 붙으니 자기의 노력이 완전히 물거품이 되고 노력의 댓가가 날아갔다는 생각을 하니 아이가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어제 세라와 나연이를 내 차로 데리고 오는데 세라도 나연이 떨어진 것에 대해 안절부절이다.

가장 친한 친구인데도 나연이는 세라에게 축하한다는 소리를 전혀 하지 못했고 세라도 나연이를 위로할 만한 말을 찾지 못했었다.

마음이 조금 진정이 된 다음에 세라에게 전화를 걸어 축하한다고 하고 나서 전화를 끊고 또 울어 대었다.

 

오늘 아침에 일어나 기색을 살피고 기분이 어떠냐고 물으니 어제는 100%슬펐지만 지금은 25%만 슬프다고 하며 휴대폰과 생일선물을 사주면 0%가 될 것 같다고 한다.

0%가 된다면 부모가 뭐든 못 해주겠냐며 아이를 데리고 나갔다.

원래 휴대폰은 고등학생이 되면 사주려고 했는데 계획이 대폭 수정되어 버렸다.

하긴 나연이 친구중에도 휴대폰 없는 아이가 없는 것 같긴 하다.

한 군데를 갔는데 별로 마음에 드는 것이 없다고 해 다른 곳에 가서 지 맘에 드는 것을 하나 사 주고 한글 학교에 자원 봉사 간 큰아이를 태우고 집에 와서 다시 큰 아이를 데리고 과외 선생님 집에 내려주고 나연이만 데리고 생일선물을 사주러 갔다.

요즘 여학생들 사이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브랜드의 작은 가방과 휴대폰주머니, 지갑을 하나 사 주고 나니 아이 얼굴에 웃음이 가득하다.

거기에 나연이가 가장 좋아하는 친구, 서연이네 가족과 저녁까지 먹고 나니 마음이 많이 풀린 것 같긴 하지만 아마도 마음 속 응어리는 한참을 갈 것 같다.

 

1년 더 열심히 준비해서 내년에 다시 도전하면 되겠지만 내년에 다시 치어리더 시험을 보게 해야 할지 어쩔지 사실은 걱정이다.

올해와 같은 일이 다시 일어난다면 나도 아이도 견디기가 더 힘들 것 같다.

 

내 부모도 나를 이렇게 키웠겠구나 싶다.

내 딸이 아파할 때 대신 아파주고 싶고, 마음에 큰 상처를 입었을 때 같이 상처 입으며 이렇게 안절부절 금지옥엽으로 키웠을 거란 생각을 하니 친정엄마가 생각나는 하루였다.

 

*서연이네랑 같이 밥 먹는 식당에서 기념으로 한 장 찍어 주었습니다. 여학생들이 가장 갖고 싶어 하는 가방과 휴대폰입니다. 휴대폰 번호 받자마자 친구들에게 전화를 몇 통 하고 나니 ,여기저기서 들어오는 전화로 바빴습니다.

 

휴스턴에서 제 글을 읽으시는 독자님들, 나연이가 아직도 마음이 아파요.치어리더에 관한 일은 나연이에게 묻지 마셨으면 감사하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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