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지만 큰 내 나라

외국인 모델들의 한복 패션쇼.

김 정아 2005. 3. 6. 03:58

2005년 3월 4일 금요일

 

 

오늘은 너무나 황홀한 날이었다.

 

옆 교육구의 한 고등학교에서 하는 'international festival'이 있는 날이었는데 한국이 주최국이어서 도와 달라는 부탁을 받아서 가게 되었다.

 

외국인 모델들이('international festival' 회원들) 각양각색의 한복을 입고 패션쇼를 하는 날이었는데 한복을 입히는 것을 좀 도와 달라는 것이었다.

 

각 나라별로 회원 중에 좀 넓은 집을 빌려 하는 것이었는데 모인 외국인들은 한복의 아름다운 빛깔만으로도 환호성을 질렀다.

 

30명 가까운 사람들의 옷을 입히는데 우리 한국인들도 뭐가 뭔지 몰라 허둥거렸다.

 

드디어 모든 사람들이 옷을 입고 2층 계단을 내려오는데 관중들의 박수와 카메라 불빛이 계속해서 퍼부어지고 있었다.

 

외국인 모델들도 흥분해 '이렇게 아름다운 옷은 처음이다' '머리가 너무 무겁다' '이런 옷을 입고 평상 생활을 했다는 게 이해가 안 된다' '가히 존경스럽다'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경험이다'갖가지 반응들이 이어지고 있었다.

 

패션쇼를 끝내고 음식을 나누어 먹고 뒷정리까지 모두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데 아쉬운 마음이 많이 든다.

 

개인 집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게 넓은 장소를 빌려서 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리허설을 하루 전 날 했다는데 모델들에게 우리 옷을 입는 기본을 좀 가르쳐 주었다면? 하는 생각도 든다.

 

남자 옷을 입는 모델들에게는 머리를 고무줄로 묶거나 무스 등을 발라 머리카락이 보이지 않게 하거나  귀고리를 떼거나 하는 등을 가르쳐 주었더라면 맵시가 더 살아났을 것 같은 생각도 든다.

 

그리고 이번 옷은 모두 개인의 소장품이다.

 

70이 넘으신 한 할아버지께서 한국을 오가며 사서 간직하시는 소유물이며, 이런 문화 행사가 있을 때마다 궂은 내색 안 하시며 기꺼이 빌려주신다.

 

더구나 행사가 있는 곳마다 찾아다니시며 옷을 입는 걸 도와주신다.

 

옷을 빌렸다 해도 할아버지가 안 계시면 아무도 제대로 짝을 지어 입히지도 못한다.

 

휴스터뿐만 아니라 루이지에나 멀리는 뉴욕까지도 옷을 빌려주신다 .

 

그래서 옷을 넣는 가방은 여기저기 상처투성이며 잘 잠기지도 않

는다.

 

그리고 한국의 화가를 불러 2천만원이라는 거금을 주고 십장생 병풍을 그리게 해 가지고 계시며 그것도 선뜻 빌려주신다.

 

정부는 정치뿐만 아니라 민간차원의 외교도 수준이하이다.

 

당연히 국가가 나서 도와주어야 할 일을 뜻 있는 민간인에게 전적으로 의존하니 국가 홍보가 제대로 될 리가 없다.

 

정부차원에서 이런 일에 도움을 주었으면 하는 바람도 가져 보았다.

 

오늘 하루 나도 한국의 아름다움을 맘껏 느껴 보았다.


 한복을 입은 분은 한국측 회장님이며, 왼쪽으로 십장생이 그려진 병풍이 보입니다.


 

 

여자 모델이 저고리 소매가 너무 짧지요?


 

 

여자 모델에게 맞는 저고리가 없어 치마 위에 두루마기를 그냥 입혔더니 맵시가 잘 살지 않았습니다.


 

강렬한 색깔의 옷을 입길 원했던 모델들입니다.


여자 모델의 머리 길이가 어중간해 어찌해 볼 도리가 없었습니다. 물론 고무줄도 없었고요.


칼 집 속에 든 칼날을 보고 너무 무서워했습니다.


 

무사 옷을 입어야 할 사람이 못 오게 되었는데 절더러 자꾸 이 옷을 입으라 했답니다.

저는 사진을 찍겠다고 우겨서 다른 분이 하게 되었답니다.


머리에 쓴 관들이 너무 무거워 고생했습니다.


둘 다 일본인 모델인데 긴 머리가 자꾸 눈에 거슬렸습니다.


 

왼쪽은 일본인, 오른쪽은 대만인데 대만 모델이 속에 두꺼운 털 옷을 입었답니다.

더워서 땀을 좀 흘렸을 것입니다.


 

밖에서 찍은 단체 사진인데 길을 걷던 사람들이 깜짝 놀라 발길을 옮기지 못했답니다.

가운데 꽃을 들고 계신 어른이 이 옷들의 소장인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