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지만 큰 내 나라

미국에서도 선풍적인 한국의 난타 공연

김 정아 2005. 3. 12. 11:47

2005년 3월 10일 금요일

 

한국에서 온 난타 공연을 보고 왔다.

 

한국에서는 보기 어려웠던 유명한 공연들을 오히려 이곳에선 더 쉽게 볼 수 있는 것 같다.

 

외국살이에 한국 공연을 보는 것은 나로 하여금 더욱 고국에 대한 애정과 한국인으로의 애착을 더 느끼게 해 주고, 내 아이들에게도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더 확고하게 해 주는 계기가 되는 것 같아 가능한 한국 공연을 보려고 노력하게 된다.

 

공연장에 도착해 돌아보니 많은 외국인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난 그 많은 사람들이 모두 난타를 보러 왔을 것이란 생각을 하지 못했다.

 

다른 공연이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홍보를 많이 했는지 정말 한국인들보다 더 많은 외국인들이 자리를 메우고 있어 그것만으로도 마음이 뿌듯해졌다.

 

공연이 시작되기 1-2분전엔 커다란 스크린에 영어와 한국어 자막이 올라와 관객들에게 난타의 개략적인 설명과 익살스러운 문구들이 적혀 있어 웃음을 유발하게 했고 '안녕하세요'라는 한국말 인사도 따라 하게 했다.

 

대사가 없는 공연인 난타는 사물놀이의 리듬을 부엌의 주방용품과 절묘하게 조화시켜 1시간 반 동안의 공연을 어느 부분에서도 지루하지 않게 해 주었다.

 

관객들은 소리를 지르고 , 박수를 치고, 발을 굴러가며 같이 요리사가 되어 빠져들었다.

 

관객 따로, 공연자 따로가 아닌 정말 한마음으로 우리는 생일 케잌을 같이 만들었고, 신랑신부의 결혼을 축하해 주었다.

 

소품을 보아도 어디 돈 들어갈 만한 것이 없다.

 

부엌칼, 오이, 양파, 양배추, 후라이팬, 쓰레기통, 남비, 빗자루, 수저, 주걱 등 주방 용품과 채소들이 소품의 전부였다.

 

그런 저 예산으로 미국 내 25개 도시를 거쳐 총 40여 개 도시에서 공연할 계획이라 하니 그 참신한 아이디어에 혀를 내두를만하다

 

공연자들과 관객들이 내뿜는 뜨거운 열기로 공연장은 화끈하게 달아오르고

 

난 가슴이 저릴 만큼 감동이 되었다.

 

마지막 기립 박수로 그들의 성공적인 공연을 축하해주고 어두운 길을 재촉해 돌아왔다.

 

이 미국 땅에서도 거센 한류 열풍이 불 날이 머지 않게 되길 바라며, 오늘 내 아이들은 한국인임을 정말 자랑스러워하며 잠이 들것이다.

 

 

*공연장에서는 사진을 찍을 수가 없어 한국 신문에 난 사진을 다시 디지털 카메라로 찍어서 올렸습니다. 조잡스럽긴 하지만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다 썼습니다. 참고로 미국판 제목은 'cookin'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