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지만 큰 내 나라

목 메어 부른 애국가.

김 정아 2006. 3. 1. 13:09

2006년 2월 28일 화요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은 도서관으로 영어 공부를 하러 가는 날이다.
도서관엔 지역 주민을 위한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개설해 운영하는데 그 중 외국인들을 위한 무료 영어 강좌가 있다.
난 2년째 같은 선생님 밑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
그리고 1년에 한번 영어 공부를 하는 사람들이 모여 ‘international party’를 한다.
오늘이 그 파티를 하는 날이었다.

 

그 동안 영어 선생님에게 배운 영어 실력으로 여러 가지 주제로 짧은 강연을 하기도 하고, 각국의 민속노래를 부르기도 하는데 작년에 우리 반에서는 아무도 나가지를 않았다.
성심을 다해 우리를 가르치는 선생님, 쟈넷께 미안한 마음이 들어 올해는 대만의 린다가 우리를 대표해 연설을 하기로 했고 ,우리 반에서  대만과 우리나라가 국가를 부르기로 했다.
그래서 우리 반은 100% 무대에 서는 반이 되었다.
붉은 악마 티셔츠를 준비해서 입고 15분이나 일찍 만나 차 안에서 네 명이 모여 애국가를 연습하는 성의를 보이기도 했다.
우리차례가 되어 나갔는데 무대에 섰던 우리들 이외에도 애국가를 따라 부르는 한국 사람이 많아 울컥 목이 잠겨 왔다. 
 


지난 주 금요일엔 도서관에서 ‘international party’에 관한 리허설을 했다.
무대에 서는 사람들이 나와 실제처럼 강단에 서서 주제를 발표하고 , 예정되어 있던 국가를 부르기로 했다.
린다가 한 가지 주제로 연설을 하고 대만과 우리나라가 국가를 부르기로 해서 우리 반 모두 리허설에 참석했다.
숙경씨가 애써 다운로드 해온 CD를 넣고 애국가를 부르는데 어찌나 눈물이 나는지 목이 메어 애국가가 나와주지 않았다.
우리 선생님도 우리가 목이 메이는 걸 보더니 눈 주위가  빨갛게 젖어 화장실로 들어가셨다.
도서를 정리하는 사서 선생님 하나가 CD에서 나오는 애국가를 듣자 우리자리에 와서 “ 나, 이 음악 정말  많이 들어봤는데 잘 생각이 안 난다” 하더니 곧바로 “ 맞아, 동계 올림픽에서 금메달 받을 때 들었는데 혹시 한국이니?” 하고 묻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매주 월요일마다 방송조회가 있어 우리는 원하지 않아도 애국가를 불러야 했었다.
그 때 부르는 애국가는 그저 요식적인 행위였고 목소리도 나지 않았고 입만 벙긋벙긋해도 그만이었고 무미건조, 지루함 그 자체였다.
그러나 그 날은 마음속에 온갖 서러움과 감동이 밀려 왔다.
정식 파티도 아니고 관중이라야 리허설에 참석한 10명도 안 되는 상황에서도 눈물이 나올 지경이었는데 정말 올림픽에서 메달을 받고 듣는 애국가는 심장을 녹일 것 같다.
우리 셋은 중간 중간 목이 메여 고개를 숙이다 미완으로  한 곡을  마쳤다.
다운로드한 CD의 음이 너무 높아 우리가 따라갈 수 없어 연습을 몇 번 하다가 도서관 매니저와 상의를 해 반주 없이 그냥 부르기로 했다.
대만은 우리보다 더 높아 양국 모두 무반주로 하기로 결론을 내렸다.
리허설이 끝나고도 우리는 잘 불러야 된다는 사명감에 집에 가는 시간도 늦추고 도서관의 빈 방에 들어가 다시 애국가를 연습했다.
 


오늘 내 생애 가장 큰 성의를 가지고, 내 모국을 생각하며  부른 절절한 애국가였다.
모든 무대가 끝나고 한 가지씩 준비해 온 음식을 나누며 담소를 하는데 우리의 붉은 티셔츠에 관심을 가지기도 하고, 홀로 한복을 입은 사람은 무대 밖의 주연이 되어 많은 사람들의 후레시를 받아야 했다.
내년에는 우리 모두 한복을 입기로 결정을 했다.
기분 좋은 하루를 보냈다.
 

*우리반의 대표, 린다의 연설이 너무 길어 지루했습니다.

 

*우리 중에 영어를 가장 잘하는 숙경씨가 애국가와 빨간 티셔츠, 한복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무대가 끝나고 우리는 후레시 세례를 받아야 했습니다.

 

*한국인과 우리 영어 선생님, 쟈넷

 

*우리반 모두, 대만친구들과 쟈넷,그리고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