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야 놀~자

영어를 못해서 미안합니다.

김 정아 2004. 4. 23. 04:50

매월 둘째 주 목요일은 큰 아이 학교의 Pizzas day.

 

Papa Zones 피자를 배달시켜 먹으면 쿠폰 한 장 당 20%가 학교 기금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나중에 피자를 배달시켜 먹은 실적이 높은 반은 피자 파티를 열어 준다.

 

피자 먹는 날마다 약속이 잡혀버려  먹을만한 여건이 안 되었는데 오늘은 남편도 늦게 온다고 해서 배달을 시키기로 했다.

 

30분이면 온다는 피자가 1시간이 넘도록 오지를 않았다.

다시 전화를 해서 무슨 일이냐고 매니저에게 물었더니 이미 출발한지는 오래 되었는데 자기도 모르겠다고 하며 50%를  깎아주겠다고 했다.

 

그래 좀 늦으면 어떠냐? 9불만 내면 되는데 

 

아이들도 그때까지만 해도 좋아하며 오랜만에 피자 먹는 것에 신나 했다.

 

그러나 그 이후로도 30분이 지났는데 소식이 없더니 전화가 왔다.

 

집을 못 찾아서 지금 헤매고 있는데 길을 알려 달라고 한다.

 

이런 난감한 일이 있나?

 

길을 전화로 알려주는 것은 내 영어 실력의 한계를 한참 지나는 것이다.

 

큰 아이에게 전화기를 넘겼는데 아이가 거리 이름을 알고 다니지는 못하고, 아이가 알고 있는 곳은 배달 하는 사람이 모르고, 배달 하는 사람이 아는 곳은 아이가 모르니 서로 통화를 했어도 특별하게 도움이 되지 못했다.

 

배달하는 사람이 길도 확인하지 않고 와서 1시간40분이나 기다리게 한다는 사실에 너무나 화가 나서 옆에서 취소 시켜버리라 고 신경질을 부렸다.

 

자기가 더 찾아보겠다고 하며 전화를 끊었다.

 

내가 정말 영어만 된다면 메니저에게 다시 전화를 해 취소하겠다고 하며 배달 맨 교육 잘 시키라고 하고 싶었다.

미국 사람이라면 시간 허비라는 죄목으로 소송이라도 걸었을 것이다.

 

피자 한판을 1시간 40분 넘게 기다린다는 게 정말 말이 되냐고.

 

그러더니 다시 전화가 왔다.

 

아직도 길을 못 찾았으니 나올 수 있느냐는 것이다.

 

어디냐고 물으니 집 앞의 Conoco 주유소라고 한다.

 

피자 배달 시켜 놓고 차 몰고 가서 받아오는 사람은 나 밖에 없을 것이다.

 

화가 나는 마음을 진정할 수 가 없어 만나면 못하는 영어지만 한 마디라도 해주고 와야 할 것 같아 마음 속으로 준비했다.

 

주유소에 내려 파파존스 차 앞에 서있는 금발의 젊은 청년을 보자 나도 모르게 마음이 약해져 버렸다.

 

저 젊은이도 우리 집 찾으려고 얼마나 애태우며 돌아다녔을까?

 

길 찾으려고 두 번이나 전화를 했는데 영어가 안 통해 얼마나 답답했을까?라는 생각이 들며 화가 났던 마음이 다 도망가버리는 것이다.

 

그러면서 내 입에서는 엉뚱한 말이 튀어나오는 것이다.

 

내가 영어를 못해서 너에게 길을 가르쳐주지 못해 미안하다

 

했더니 청년은 너무나 황당한 얼굴이다.

 

당연히 화를 낼 줄 알고 잔뜩 졸아 있는데 웬걸 손님이 미안하다니 너무 어이가 없었을 것이다.

 

피자 값을 지불하고 생각도 안 했던 팁 2불을 주었다.

 

그랬더니 나에게 다시 2불을 돌려주려 해서 괜찮다. 너에게 주는 것이다 라고 했더니 환하게 웃으며 너 정말 멋있다라고 한다.

 

다 식어버린 피자를 받아 오면서 나는 우스워 실소를 머금었다.

 

금발의 젊은 남자 앞에서 戰意를 상실하고, 오히려 영어를 못해서 미안하다는 말까지 하고 온 내가 너무나 우스웠다.

 

그러나 목숨이 오갈 만큼 대단한 잘못을 한 것도 아닌데 얼굴 찡그리고 화내는 것 보단 차라리 웃는 얼굴도 돌아서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저러나 나의 이 영어는 언제 늘어 내 맘대로 말할 날이 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