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미국적인..

오늘도 미국 어린이들에게서 배운다.

김 정아 2004. 3. 11. 00:34

오늘도 도서관 자원 봉사를 하고 왔다.

오랫동안 열심히 꿋꿋하게 버티어 왔다는 생각이 든다.

어차피 내가 이들의 말을 이해할 수 없다면 몸으로 부딪혀 알아가야 할 것 같아 남들은 이 주일에 한번, 한 달에 한 번 하는 봉사를 난 매주 하기로 했었다.

 

1학기 때는 오로지 나 혼자여서 정말 힘들었다.

반납된 책을 제 자리에 꽂는 것은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이들의 질문은 도대체 처리 해 줄 수가 없었다.

무슨 말인지 파악도 안 되는데 어떻게 도와준단 말인가?

그러나 이제 눈치로 무엇을 묻는지 알아 차릴 수 있게 되었고, 내 손에서 해결이 안 되겠다 싶은 것은 librarian에게 물어보라고 방법을 알려주기도 한다.

 

그리고 2학기에 들어오면서부터 2주에 한번 짝꿍도 생겨 일을 분담하게 되면서 부담도 훨씬 줄고, 또 친절한 내 짝꿍 shonna는 도서관 일 뿐만 아니라 아이들 여름 캠프나 미국 문화에 대해서도 잘 가르쳐 준다.

 

난 도서관 자원봉사를 하면서 미국 아이들의 큰 장점을 알게 되었다.

첫 순위에 꼽을 수 있는 건 단연 이들의 정직함이다.

이곳의 도서관은 한국 보통 교실의 배 정도 되는 것 같다.

도서실 벽의 끝과 끝을 제외하고는 모두 뚫려있다.

도서관 문을 잠글 수가 없게 되어있고, 나머지 양쪽 벽은 24시간 개방되어있다.

그럼에도 도서관의 책이 분실되는 게  단 한 권도 없다는 것이다.

자기가 대출 한 책 이외에는 절대로 손대지 않는다.

그리고 책을 읽은 다음에 컴퓨터로 보는 AR테스트라는 것이 있다.

컴퓨터를 켜서 질문 내용에 답하는 것인데 읽은 책을 몰래 들고 와서 보는 학생도 없을 뿐만 아니라, 감시하는 관리자도 없다.

자기 양심에 따라 틀리던, 맞던 열심히 풀 뿐이다.

교직에 오래 있어 본 나, 이 부분에 대해 할 말이 참 많다.

수행 평가의 일환으로 한문 쪽지 시험을 한 과가 끝날 때마다 본다.

공부를 잘 하는 애든, 못하는 아이든 어떻게든지 남의 것을 보려 하고 , 아예 책 한 장을 찢어 종이 아래 깔고 쓴다든지,지우개에 써 놓는다든지 갖가지 방법을 동원하는 학생들에게 너무나 실망 하곤 했다.

매 시간마다 적어도 3-4명이 내 눈에 띨 지경이니 ,좋은 말로 타이르고, 따끔하게 혼을 내고, 낮은 점수를 주어도 나아지는 기미가 없었다.

그럴 때마다 느끼는 자괴감은 나를 맥 빠지게 했다.

기껏 쪽지시험 한 장에 정직을 담보로 내놓고, 교사의 신임을 잃고, 아무 거리낌 없이 양심까지 저버리는 아이들.

아직 피지도 않은 어린 학생들이 왜 저렇게 술수에만 눈이 밝을까? 원인이 무엇일까?.

아이들의 잘못으로만 떠 넘길 수 없는 사회적인 분위기다.

가깝게는 부모들이 그렇게 살지 않았기 때문이고, 더 멀리는 우리 사회나 정치 어느 한 군데서도 정직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예전에 국가 도덕 지수 삼십 몇 위라는 뉴스를 보았을 때 왜 그럴까?했었다. 이제 이유를 알 것 같다.

한국 아이들과 대조되어 보여지는 이들의 모습은 가히 신선한 충격(?)이었다.

 

둘째, 이 아이들에게서 배우는 것은 '시민 의식'이다.

도서관에는 10년 이상 된 책도 많다.

그러나 손때가 묻었을 뿐 책의 어느 페이지도 거의 손상된 부분이 없다는 것이다.

볼펜으로 낙서가 되거나, 찢겨지거나, 구겨진 부분도 없다.

자기가 읽을 책을 골라 훑어 본 다음 혹시 뜯어진 부분이 있으면 가져와서 나에게 보여주고 해결을 해 달라고 한다.

그러면 나는 테이프로 붙여준다.

자기 집의 책처럼 그렇게 깨끗하게 본다.

우리나라의 대학 도서관이던, 병원이던, 은행이던, 비치된 책의 여러 페이지가 찢어져 나간 것을 쉽게 볼 수 있는 것과 너무나 대조적이다.

우리는 많은 부분에서 미국을 부정하고 반미를 외친다.

그런 나라지만 미국을 왜 선진국이라 부르는지 너무도 확연하게 깨닫는다.

아직 어린 학생들이지만 난 오늘도 이들에게 많은 것을 배운다.

 

*아래 사진은 bluebonnet reader이라고 하는 클럽의 학생들입니다.

학년초 꼭 읽어야 할 책의 목록을 주고 그 클럽에 가입하여 모두 책을 읽은 학생들을 도서관에 초대해 파티를 열어줍니다.

마술사가 와서 마술 쇼도 해주고 쇼가 끝난 다음에 음료수와 케익도 나누어 주었는데 지나가는 많은 아이들이 너무나 부러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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