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쁘거나 슬프거나..

사표를 쓰다.

김 정아 2005. 12. 5. 00:49

2002년 12월 2일 금요일

 

사직서를 썼다.
4년 전 인천 공항을 떠나오면서 아마 다시 교단으로 돌아오지 못하겠지 라는 막연한 생각을 했었다.
큰 아이가 8학년이 된 지금에 와서는 도저히 한국으로 돌아갈 엄두를 내지 못하겠다.

 

남편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난 지극히 이기적인 엄마다.
아이들 생활만큼 내 생활도 중요하고,그래서 아이들을 위해 내 삶을 희생하며 살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교사로서의 내 삶도 소중하기 때문에 돌아가 복직할 생각도 많이 했었고,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로 앞으로 2년만 근무하면 연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돌아가려 했었다.

 

이곳에 사는 동안 우리는 수도 없이 고민해 왔다.
남편의 임기 후 가족 모두 들어가 2년만 근무하다 다시 나올까?

원석이만 다른 집에 맡겨 놓고 세 명만 들어갈까?

나는 원석이와 여기 남고 한국어 공부도 시킬 겸 아빠가 나연이만 데리고 들어갈까?

아이들만 다른 집에 맡기고 우리 부부만 들어갈까?

아무 미련 갖지 말고 가족 모두 들어갈까?

어느 누구의 희생도 없이 4명 모두에게 가장 만족할 만한 결정은 무엇일까? 

 

 

나와 남편은 직장에 복귀하는 것, 원석이는 이곳에 남는 것, 나연이는 돌아가 한국어를 공부하는 것이 각자에게 최선의 방법이다.
그러나 각자 최선이라는 이 방법을 택한다는 것은 사춘기를 앞둔 큰 아이의 희생이 엄청난 것이고, 혼자 남겨진 아이가 심적으로 받는 충격은 세상 어느 것으로도 보상받지 못 할 것이다.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고 결론을 내려놓으면 다음 날 다시 바뀐다.
그러기를 몇 달을 계속하다 힘들게 내린 결론은, 그래도 가장 합리적인 결론은 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이곳에 남는 것이었다.
결국 이렇게 이산 가족이 되는 것이 최상의 방법이었다.

 

이 방법 끝에 내가 해야 할 일은 사표를 내는 것이었다.
막상 자필의 사표를 쓰고 나니 마음 한 가운데가 뻥 뚫릴 만큼 허전하다.
내 속의 가장 중요한 무언가가 빠져나가 버린 자리가 너무 크다.
돌아갈 직장이 있어 놀면서도 당당했고 떳떳했는데 이렇게 사표를 쓰고 나니 한때 교사로의 삶이 너무 지겨워 힘들어했던 그 시간까지 그리워진다.

 

그러나 이런 선택을 후회는 하지 않는다.
내 손에서 어리광도 부리며 사랑도 받으며 커 가야 할 두 아이가 있으니!

 

며칠 전에 사표와 서약서와 위임장을 써 놓고도 나는 선뜻 우체국에 가지지가 않는다.
다만 며칠이라도 더 붙잡고 싶은 마음을 나도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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