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백수 아줌마

나의 싱가폴 친구, 도리스에 대해.

김 정아 2004. 2. 24. 04:58

오늘 싱가폴 아줌마 도리스의 집에 초대를 받았다.

우리와 같은 공간에서 공부를 하지만 멀리 떨어져 있어 그다지 친하게 지낼 기회가 없었다.

그러다 태희 집에서 같이 식사한 이후에 우리 아시안 클럽에 뒤늦게 합류했다.

 

그녀는 중국 태생인데 17세에 싱가폴에 건너와 고등학교와 대학을 싱가폴에서 나왔다고 했다.

그녀의 현재 국적은 싱가폴이다.

 

우리 아시안 클럽에서 완타니와 도리스가 가장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데 도리스의 말에 따르면 싱가폴의 현재는 영어와 중국어 둘 다 필수로 배우고 있다고 한다.

예전에는 중국어 학교와 영어 학교를 선택해서 다녔다고 한다.

싱가폴도 미래엔 경쟁력 있는 나라가 되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영어와 중국어가 가장 힘있는 언어가 될 테니까.

 

그녀는 매몰차다 싶을 만큼 강인한 면을 가지고 있다.

어느날 아이가 꾸물거리다 학교버스를 놓쳤다고 한다.

울면서 학교에 데려다 달라고 애걸하는 걸 단호하게 뿌리치고 네가 잘못해서 늦은 거니까 걸어가라고 했다는 것이다.

아이만 걸어가게 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어서 자기는 차를 타고 천천히 아이 뒤를 따라가고 아이는 학교까지 20분이 넘는 거리를 땀을 흘리고 걸어가 지각생이 되었다고 한다.

그 이후로 절대로 학교 버스를 놓치는 일이 없다며 우리 중 누군가가 아침마다 아이가 학교에 늦을 것 같아 불안하다고 하자 자기 방법을 알려주었다.

 

나는 점심이 준비될 때까지 도리스의 다섯살 난 아들 제이슨과 놀았는데 이 녀석 영어가 얼마나 유창하던지 나는 그 꼬마에게마저 기가 눌려버려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하고 눈치로 감을 잡았다.

생전 처음 눈을 보았다며 사진을 보여 줄 때 나는 적당한 감탄사만 연발했는데 아이는 그게 신이 났는지 나와의 대화를 끝낼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이후 점심을 먹었는데 잔 멸치에 땅콩을 같이 볶은 것과 국물 없는 국수에 간장으로 간을 하고 새우를 넣어 만들었는데 맛이 기가 막혔다.

조리법을 설명해 주는데 반은 알아듣고 반은 못 알아 들었으나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아는 체를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산후나 생리후에 특별식으로 먹는다는 닭국을 내어 놓았다.

대추, 인삼,황기종류로 보이는 약재에 닭을 넣어 여섯 시간을 우려 내었다는데 국이 아니라 약처럼 보였다.한약 냄새가 진하게 느껴졌다.

 

나는 문득 멜리다가 이 냄새를 맡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멜리다는 베네주엘라 아줌마로 우리 '아시안 클럽' 회원 개인 개인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이다.

할로윈에 멜리다의 집에 초대를 받아 할로윈 복장도 입어보며, 모처럼 와인도 마시고, 베네주엘라 고유도 춤도 배워보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었다.

멜리다가 그 때 내 놓은 음식을 우리는 눈치를 보아가며 먹는 척했고, 어떤 이는 음료수와 과일만 먹기도 했다.

워낙 아시아 사람들의 취향과 다른 음식이어서 점심을 먹는 게 좀 거북했었다.

멜리다가 우리 아시안 클럽과 친해 우리 팀에 합류시킬까? 생각도 해 보았는데 역시나 좀 무리이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만나면 통하는 게 너무나 많다.

음식에서부터 서로의 문화까지 많이 알고 있는 편이다.

일본의 메이지 유신이나, 중국의 천안문사태, 한국의 한글까지.

이야기를 하다 보면 너희가 이런 것도 알고 있어? 하고 서로 놀랄 때도 있다.

거기에 요즘은 한국의 연예인 이야기도 많이 한다.

이야기를 하다 안 통하면 가차없이 나오는 게 한자다.

특히 과일이나 채소는 영어이름을 모르는 경우가 있어 한자를 사용하는데 모두 !그거 하고 알아차린다.

 

다음 번 내 차례에는 자장 밥을 준비하려고 하는데 과연 멜리다가 먹을 수 있을까?

밥상에 검정 색이 들어가면 질겁하는 그들이라 들었는데.

멜리다가 '아시안 클럽'에 들어오면 팀 이름 바꾸는 것이야 어렵지 않지만 멜리다 자신이 너무 힘들 것이다.

엉뚱한 생각에서 벗어나 우리는 즐거운 점심 시간을 갖고 영어 실력도 좀 늘리고(그렇다고 얼마나 늘어?)돌아왔다.

 

요즘은 하루하루 사는 게 참 즐겁고 기쁘다.

이전에 내가 알아차리지 못한 나의 적성을 요즘 자주 발견한다.

나의 적성은 전업주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