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남자에 대해

한국으로 출장을 떠난 남편.

김 정아 2005. 11. 17. 00:05

2005년 11월 16일 수요일

 

남편은 2001년 12월, 휴스턴 지사로  발령을 받아 4년을 근무했다.
올 연말이면 임기를 무사히 마치고 한국의 본사로 복귀하게 된다.
그런 남편에게 본사에서는 한국으로 출장을 오라해서 오늘 한국행 비행기를 타고 떠났다.
연말에 들어갈 사람에게 11월 중순에 출장을 오라는 게 이해는 안 되지만 회사 조직원의 일원이니 지시를 따를 밖에 없긴 하다.

 

요즘 남편은 본사 복귀를 앞두고도 정신이 없다.
캐나다 출장을 갔다가 지난주 목요일에 돌아온 이후 오늘 아침까지 거의 일주일간 우리 부부가 나눈 말을 초침 시계로 잰다면 약 180초도 안 될 것이다.
수시로 오는 출장자들로 인해 남편은 집에 들어오는 시간이 새벽 2시 이후이고, 토요일도 일요일도 사무실에 가서 산다.
새벽 2시쯤에 지친 몸을 이끌고 들어온 사람에게 대화 좀 하자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아침에도 눈을 뜨자마자 사무실로 달려나간다.

 

한국에선 남편과 앉아서 9시 뉴스를 같이 보는 게 소원이었지만 그래 본 기억은 없다.
해외 지사를 나가면 좀 시간 여유가 있을까 했는데 여기선 더 안 된다.
남편을 포함해 주재원 두 명과 현지 여직원 두 명뿐인 단출한 사무실이지만 본사 전체 매출액의 사분의 일 정도가 이 휴스턴 지사에서 이루어진다.
막대한 자금이 오가는 지사의 지사장이다 보니 막중한 책임감 때문에 스트레스는 가중되고, 행여 문제라도 발생하면 이리 뛰고 저리 뛰어 해결하다 보면 자기 몸 하나 가누기가 힘들어 질 것이다.

 

그런데 요즘 그 문제라는 것이 여기저기서 터지는 모양이다.
새벽 3시쯤 일어나 한국과 통화하는 날이 셀 수도 없고, 하루 거의 대부분을 전화기 붙들고 통화하느라 입에서 쓴 냄새가 날 정도이니 집에 와서는 말 한 마디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나와는 일주일에 대화하는 시간을 관대하게 잡아도 10분을 넘지 않는다.

 

남편에게 별 불만은 없다.
모든 면에 성실하고 정직하고 기본적으로 너무 착한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인간적으로 남편을 엄청 신뢰한다.

 

그러나 딱 한가지 불만은 결혼 초기인 15년 전이나 지금이나 같다.
둘이 앉아 오손도순 살아가는 이야기를 같이 나누는 것, 하루 있었던 일과를 말해주면 "어, 오늘 그런 일이 있었어?" 다정하게 대답해주며 사는 것, 회사에서 힘들었던 일을 서로 나누며 사는 일이다.

 

우리 부부에겐 너무나 힘든 일이다.
남편과 그런 일들이 안 되기 때문에 난 남편이 옆에 있으면 더 외롭다.
이렇게 출장이라도 가 버리면 기대하지 않기 때문에 맘은 더 편하다.
요즘 사는 게 너무 우울하고 짜증난다.

 

 

*오늘 기름 넣으러 갔다가 홀가분한 사진 한장 찍었습니다.

허리케인 이후로 1갤런 당 3불대 까지 치솟던 기름값이 많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엑손에서 찍은 이 사진은 약 한달 전 이고, 아래 발레로는 오늘 찍었습니다.기름 값이 내려가 마음이 한결 홀가분해 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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