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백수 아줌마

나의 대만 친구, 실비아에 대해.

김 정아 2003. 11. 27. 02:03

실비아가 같이 모이는 우리에게 점심을 사겠다고 지난 주부터 약속을 잡아 놓은 날이다.

한국 사람 5명과 태국의 완타니, 일본의 구미코, 대만의 실비아가 우리 영어 반에서 잘 어울리는 사람들이다.

돌아가면서 각자 집에서 간단하게 점심을 먹는 모임을 만들어 여러 차례 서로의 집을 방문했다.

오늘 실비아 차례였는데 자기 집이 너무 좁아 우리를 집으로 초대할 수 없다고 양해를 구하며 식당에서 점심을 대접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오늘 중국 뷔페에 가게 되었다.

실비아는 익살스럽고 재치가 넘친다.

모국어로 재치 있게 말하는 것도 힘든 데 실비아는 영어로도 곧잘 우리를 웃게 만든다.

수업에 들어와서는 먼저 말을 걸고, 누군가 혼자 있으면 옆에 가서 친구가 되어주기도 한다.

애교가 많은 친구이기도 하고, 한참 나이 많은 나를 허물없이 언니 대하듯 한다.

또한 실비아가 며칠 간 학교를 안 나왔거나, 긴 연휴가 끼여 얼굴을 못 볼 때면 곧잘 전화를 해 준다.

어떻게 지냈느냐고 묻고, 애교스럽게도 “나, 너 보고 싶다”고 항상 말해준다.

그 말이 재미있어 이야기를 한참 하고 전화를 끊고 나면 이상하게도 마음속에서 ‘아, 나도 영어를 잘 할 수 있을 것 같아’ 하는 이유 없는 자신감이 생기곤 한다.

참 대단한 능력을 가졌다. 남에게 힘을 주고 용기를 주는 아름다움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모르겠다.

어울리는 우리 중 가장 나이가 어린데도 남을 배려하는 마음도 예쁘다.

그리고 아침마다 남편과 아이를 위해 체감온도를 조사하기 위해 밖에 나와서 기온을 살피고 날씨가 더우면 짧은 팔을 챙기고, 좀 선선하면 긴 팔을 챙겨 출근 시킨다고 해 우리는 “넌 참 좋은 아내고, 좋은 엄마다” 라고 했더니 “나도 알고 있다”고 해 우리는 또 악의 없는 웃음을 짓는다.

그리고 그녀는 나보다도 8개월 늦게 이곳에 왔다.

남편이 미국 기업에 취업이 되어서 왔는데 이제 1년이 막 지났다.

그러나 영어 실력은 나의 10배는 넘는다.

그런 영어가 어디서 왔는지 정말 궁금하다 .

어떻게 영어를 그렇게 잘 하느냐고 물어보면 그냥 고맙다는 말만 하고 특별한 이야기를 안 하니 잘 알 수가 없다.

대학 전공도 회계학인데 ….

실비아가 내게 “왜 컴퓨터를 다니느냐?영어 클래스에 다시 와라”해서 “영어에 발전이 없어서 좀 쉬려고 한다” 했더니 실비아는 정색을 하면서“너 영어 정말 많이 늘었어 .실망하지마. 작년에 내가 너한테 뭐 물어보면 항상 두 번 씩 되 물었잖아. 올해는 다 알아듣잖아.”

그러나 난 주저함 없이 그런 말이 왜 나왔는지 명확한 답을 알고 있다.

그것은 서로에 대한 ‘익숙함’이다.

처음 그들을 만났을 때 정말 아무 말도 못 알아 들었다.

한국사람의 영어와 중국 사람, 일본 사람, 태국 사람의 발음들이 약간씩 다 차이가 있다.

그러나 오래 듣다 보니 그들이 한 단어에 대해 어떻게 발음하는지도 익숙해지고 그들의 어제와 오늘의 생활에 대해 어느 정도 알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정말로 알아들어서가 아니라 대충 눈치로 감을 잡는 것이다.

그리고 실비아와 완타니의 경우 쉬운 말을 골라 내게 이야기를 해준다.

완전한 문장을 만들어 말 해본적이 거의 없다는 걸 나 자신이 더 잘 알고 있으며, 작년과 올해 내 영어에 별반 차이가 없다는 것도 난 잘 알고 있다.

여하튼 영어 반은 좀 쉬려고 생각중이다.

스트레스 받아가며 하는 것은 이제 그만 하고 싶은 마음이고, 작년 학기 동안 수술하고 집에 있던 날,그리고 한국에 다녀왔던 외에는 결석이란 걸 해본적이 거의 없었다.

내 인생에 처음으로 맞는 전업주부 생활인데 융통성 없이 빡빡하게 살고 싶은 마음도 이제는 없다.

그리고 영어에 매달리고 싶은 마음도 없다.

또한 이제 여기서 살 시간보다 한국으로 돌아갈 날이 더 가깝다.여유 있는 마음으로 살고 싶다.


김치까지 준비된 중국 뷔페에서 멋진 시간을 함께 한 날이었다.


오른쪽에서 두 번째 긴 머리를 한 사람이 실비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