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미국적인..

클레오파트라, 마녀,왕이 되어...

김 정아 2003. 11. 9. 01:10

한국에 있을 때 난 전업 주부는 모두 다 한가하고 시간이 많은 사람인 줄 알았다.

그러나 내가 막상 전업 주부가 되고 보니 직장 다니는 사람 못지 않게 바쁨을 알게 되었다.

남편, 아이 다 직장으로, 학교로 보내고 나서 아침 먹은 것 대충 정리하고 나도 8시 30분쯤 학교로 향한다.
집에서는 숙제나 복습이 잘 안되어 일찍 나가서 책을 좀 들여다 보는 편이다.

내가 학교에 도착하면 2명쯤 먼저 와 있고 내가 세 번째 쯤 된다.

그리고 12시 30분까지 공부하고 헤어지는 게 아쉬워 여러 나라 아줌마들과,혹은 한국 아줌마들과 점심을 같이 먹는다.

긴 점심 시간을 마치고 집에 오면 큰아이가 3시에 집에 오고 , 간식해 주고 기다리고 있으면 작은 아이가 4시 15분에 들어온다.

잠시 쉬었다가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각기 다른 과외 활동을 한다.

집으로 선생님이 오는 경우도 있고 일주일에 네 번은 내가 데리고 꽤 먼 곳 까지 운전해 가 주어야 한다.

그리고 7시 30분쯤 저녁을 먹고 9시까지 T.V를 보고 아이들을 재운다.

아이들을 재운 다음 한국 비디오(요즘은 ‘상두야 학교 가자’와 ‘대장금’에 빠져 있다)를 12시까지 보고 잠자리에 들어 다음날 새벽 6시 10분에 일어난다.

그리고 중간중간 30분쯤 운전해 한국 장을 보러 나가야 하고, 아이들 준비물을 챙기러 쇼핑센터를 헤집고 다닐 때도 많다.

그러니 생활에 혼자 조용히 내 시간을 갖는 여유가 없는 편이다.

마음만 먹는다면 내 시간을 충분히 만들 수 있겠지만 여러 사람과 어울리는 것이 내 생활에 활력이 되는 편이라 힘들어도 굳이 나만의 시간을 만들려 안달하진 않는다.

오늘 멕시코 아줌마인 마리아의 집에 초대를 받았다.

같은 테이블에서 공부하고 만난 지가 꽤 오래 되었다.

어제 나연이 필드데이에 다녀오고, 축구 장에 데려가고, 할로윈 파티 복을 준비하러 다녀 오늘 너무 피곤했다.

그래서 정중히 거절을 했었다.

“나 오늘 너무 힘들어 낮잠을 좀 자야겠다”고 했더니 마리아가 너무 서운해 하는 것이다.

할 수 없이 가겠다고 하고 한국 친구 3명과 싱가폴 아줌마와 베네주일라 아줌마랑 그녀 집에 갔다.

우리는 집에 들어가자마자 함성을 질렀다.

집안 거실이 온통 할로윈 장식으로 꾸며져 있었다.

소파는 차고로 옮기고 그 자리에 5개의 작은 원형 테이블을 놓고 할로윈 식탁 보를 씌우고 20개쯤 되는 작은 의자들을 놓고 있었다.

작은 테이블 위엔 위스키 잔과 포도주 병과 냅킨으로 SEP-UP이 되어있었다.

그리고 거실의 카펫 위엔 넓은 나무판을 깔아 무대를 만들어 놓았다.

“왜 이렇게 했냐”고 물었더니 이번 주말에 어른 40명을 초대해 할로윈 댄스파티를 연다고 했다.

나이트 크럽에서나 본 듯한 반짝거리며 돌아가는 휘황한 조명이 더 분위기를 나게 했다.

여러 집을 다녀 봤지만 우리는 너무나 색다른 분위기에 잠시 넋을 놓고 있는데 마리아는 자기가 직접 만들기도 하고, 사기도 한 할로윈 복장을 들고 나왔다.

각자 마음에 드는 것을 입고 사진을 찍자는 것이다.

우리는 아무도 빼는 사람 없이 각자 맞을 만한 커스텀을 집어 들고 입었다.

클레오파트라, 닌자 거북이, 마녀, 공주 , 왕, 연미복 등을 입고 밖으로 나가 사진을 찍었다.

아이들이 입고 다닐 때 나도 내심 한 번 입어 보고 싶었는데 이렇게 기회가 생겨서 난 너무나 신났다.

그리고 다시 들어와 멕시코 스타일의 치킨 밥과 이름을 잊어버렸지만 치즈가 늘어지는 음식을 먹었다.

마리아가 따라 주는 와인도 두 잔이나 받아 마셔 모두 얼굴이 붉어졌다.

맥주 한 캔에도 헬렐레 하던 내가 여기 와서 술도 많이 늘었다.

이제 맥주 세 캔도 버틸 수 있게 되었다.

주말마다 거의 누군가를 초대하거나 초대 받는 경우가 많아 술 마실 기회가 엄청 많아졌기 때문이다.

아니, 내가 이걸 자랑이라고 말하고 있나?

베네주엘라의 다이아나가 내게 “여기 산지 몇 년이나 되었냐”고 물어 “1년 7개월 되었다”고 했더니 “너 영어 너무 잘한다! 난 여기 와서 2년 지날 때 까지 한 마디도 못했어!”하며 깜짝 놀랜다.

그러나 그것이 기분 좋을 리가 없는 게 우리는 기본적으로 6년은 죽어라고 영어 공부를 하는 것이다.

중남미 사람들이야 공부에 목숨 건 사람들도 아니고, 영어를 중요하게 생각지도 않고, 교육열이 높지도 않은데 그런 나라들과 비교 할 수는 없는 것 아니겠는가?

우리는 즐겁게 서로의 나라에 대한 이야기도 했다.

싱가폴 아줌마 도리스의 말에 따르면 싱가폴의 현재는 영어와 중국어 둘 다 필수로 배우고 있다고 한다.

예전에는 중국어 학교와 영어 학교를 선택해서 다녔다고 한다.

‘싱가폴도 미래엔 경쟁력 있는 나라가 되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영어와 중국어가 가장 힘있는 언어가 될 테니까.

아이들이 돌아올 시간이 되어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 오후에도 축구장에 데려가야 하는데 오늘 너무 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