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야 놀~자

영어라는 사슬에 메여...

김 정아 2003. 10. 1. 05:31
요즘 내내 기분이 우울하다.

한동안 영어로 인한 스트레스를 안 받고 목표를 낮게 가져서 즐겁게 다닐 수 있었는데 자꾸 짜증이 난다.

사람들을 만나면 입으로야 난 여기 오래 살 사람이 아니라서 영어 못해도 스트레스 안 받는다고 말하고 다녀도 가끔 돌아보면 그건 또 아닌 것 같다.

이곳에 온지가 벌써 1년 7개월이 되어가고 있는데 영어는 항상 그 수준이다.

작년에 귀에 들어오지 않았던 단어는 올해도 마찬가지로 멍하다.
조바심을 갖지 않으려 해도 어떤 날 영어 잘하는 저쪽 테이블의 중국아줌마를 보고 내 옆자리에 태국아줌마, 일본 아줌마를 보면 마음속에 일어나는 불안을 삼킬 수가 없다.

학교 다닐 때 선생님들이 뭔가를 질문하면 누구보다 먼저 대답을 했고 그런대로 남에게 빠지는 공부는 안 했건만 남들 다하는 대답도 못하고 그냥 앉아 있으려니 자존심도 상하고 기분도 나쁘다.

하다 못해 작년 예비자 교리시간에도 수녀님이 묻는 질문에 대답을 가끔 하는 편이었는데 남편은 옆에서 눈을 크게 뜨고 놀란다.

어떻게 그런 것들을 다 기억하고 있느냐고 한다.

그러면 어깨를 피고 나 학교 다닐 때 공부는 좀했어하는데 말이다.

이제 도서관에서 책 빌리지 말까?

학교에서 공부하고 와서 오후에는 소설책을 읽으면서 보내고 인터넷 연결해서 칼럼 올리고 그러면 복습할 시간이 없는데 소설책을 읽지 말아야 하나?

그래도 최명희 혼불 10권까지는 이미 시작했으니 읽어야겠고 다음부터는 죽자사자 영어에 한번 매달려 볼까?

항상 주기가 있는 것 같다.

어떤 때는 영어를 못해도 학교에서 한국사람들 만나 같이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고 또 어떤 때는 한마디도 못 알아들어 가슴이 아리면서 불안해지기도 하고.

여기에 사는 한 영어라는 사슬에서 절대로 자유로워질 수 없을 것이다

언제쯤 아이들 학교 상담때 남편 없이 혼자서 당당하게 갈 수 있을까?

그런 날이 오긴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