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미국적인..

허리케인이 상륙해 잠시 지도에서 사라졌던 갈바스톤에서

김 정아 2003. 9. 20. 00:40

4월 6일 토요일

휴스턴 한인 체육회에서 대대적으로 박찬호 응원단을 모집했다.

많은 비용을 내고 등에 park61이라는 글자까지 쓰여진 티셔츠를 받고 6시간 걸린다는 레인져스 구장에 가려고 들떠 있었다.

김밥도 싸고 소풍준비도 마음속으로 다 끝내놓았는데
박찬호 아저씨가 부상을 입어 오늘 경기에 등판을 못한다고 한다.

너무나 아쉽지만 환불을 받아가라 하기에 환불까지 받으니 속도 상한다.

언제 다시 기회가 있겠지만 아이들도 무척 서운한 모양이다.

아니 아이들 보다 내가 더 서운하다.

야구 경기를 좋아하진 않지만 요즘 애국심에 불타 박찬호 응원하며 조국의 정을 느껴보려 했는데.

다음 기회를 봐야지 어쩌겠나.

'오늘은 뭘 하지' 하고 있는데 남편이 갈버스튼에 게를 잡으러 가자고 한다.

한국에선 피곤해서 주말에 어디 가자고 할까봐 겁났는데 요즘 아주 신난다.

남편이 여행하는 것 좋아해서.

여기 올 때 가졌던 가장 큰 계획이 여행 많이 가는 것이었는데

둘이 손발이 척척 맞는다.

게 잡을 미끼로 쓸 커다란 닭다리를 사서 마음도 경쾌하게 2시간쯤 걸려 갈바스톤 바다에 도착했다.

가끔 허리케인이 상륙해 모든 것을 집어삼킨다는
파도가 오늘은 잠잠하고, 놀러온 관광객들을 바라보며 우리도 즐거웠다.

커다란 배에 자동차를 싣고 10분쯤 항해하다 섬에 내렸다.

승선 요금이 꽤 비쌀 거라 생각했는데 사람과 자동차 모두 공짜였다.

미국에서 처음으로 가장 마음에 드는 일을 경험했다.

무슨 나라가 서비스라는 게 없다.

케잌을 사도 초 공짜로 절대 안 준다.

가구를 사도 무료 배달이라는 게 없고 음식 배달이라는 것도 절대 없다.

드라이 크리닝도 자기가 갖다주고 자기가 찾아와야 한다.

선글라스 맞추는 것도 안과의사의 진단서가 있어야 하고 병원에 가서 이 하나 뽑는데도 자그마치 50불이나 든다.

학교 담임선생님 상담하는 것도 3시 30분 이후는 안 된다.

퇴근시간을 내주지는 않으니까.

아이들 학교 친구들을 초대해 와도 간식은 먹여도 되는가?

저녁을 먹여 보내도 되는가 아이의 부모에게 허락을 받아야 한다고 한다.

사람의 몸무게는 파운드, 키는 인치, 기온은 화씨, 속도는 마일

도대체 적응이 안 된다.

나에겐 세상 살기 가장 불편한 나라가 이곳이 아닌가 싶다.

이런 나라에서 배타는 게, 그것도 차까지 실어주며 공짜라니 신기하다.

섬에 들어가 주차를 하고 낚시 줄에 닭다리를 꼭 붙잡아 매어서 바다 속에 집어넣었다.

잠시 후 나연이와 원석이가 게를 한 마리씩 잡아 올렸다.

너무나 신나서 "우리 게 많이 잡아서 매운탕 끓여 먹고 닭다리 값하자"며 파이팅을 외쳤는데 웬걸 그걸로 끝이었다.

바람이 어찌나 세게 부는지 추위에 떨었고 잠시 후
모두들 지쳐서 빨리 가자고 해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다.

휴스턴 바람이 유명하다던데 정말 실감한 하루였다.

그래도 아이들이 한 마리씩 잡아 다행이다.

돌아오는 길에 잡은 게들을 풀어주고 저녁을 먹으러 바다음식점에 들어갔다.

오랜만에 싱싱한 해물들을 맛 볼 수 있을까 기대 했는데 이곳 사람들은 회를 안 먹는다고 한다.

한국의 회가 생각난다.

한국 들어가면 많이 먹어야지.

어디 먹고 싶은 것이 회뿐인가.

남의 눈치 안보고 생선도 구워 먹고 싶고 순대도 먹고 싶고 아이들 아침에 그렇게 먹고 싶어하는 김치도 먹여서 학교 보내고 싶고 등등... 그만 하자

이국에서의 오늘 하루도 이렇게 저물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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