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28 목요일
나연이 농장견학에 helper로 따라갔다.
처음
가정통신문을 보았을 때는 당연히 갈 생각을 전혀 해보지 않았다.
예전의 습관대로.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니 내가 집에서
노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가겠다고 사인을 해서 보냈는데 많은 사람들이 나를 놀렸다.
"나는 지금까지 이곳에 있는 동안
한번도 가 본적도 없고 영어가 짧아서 앞으로도 갈 생각이 없는데 나연이 엄마 참 용감하네" 다들 이런 반응이었다.
하지만
어쩌랴.
이제 와서 취소할 수도 없고 가만히 앉아서 미국의 학교문화를 들여다 볼 수는 없지 않는가? 그래 ,한번
부딪쳐보자
아침 일찍 일어나 샤워하고 여기 와서 몇 번 해 본적 없는 화장을 정성껏 하고 향수까지 뿌리고 점심 도시락을 싸고 아이가
치마를 입고 오라해서 치마까지 챙겨 입고 1시간 전에 학교에 도착했다.
나의 무식한 추진력으로 원석이 학급에까지 찾아가 안 되는
영어로 선생님과 1분 대화를 하고 (선생님은 내게 많은 말씀을 하셨지만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은 won suk is very nice
boy였다)
나연이반을 못 찾아 어떤 선생님께 부탁을 해 찾아갔다.
나연이가 나를 보더니 너무 반가웠는지 활짝
웃었다.
한국에서는 대장 노릇하던 아이가 여기 와서는 아침마다 학교 안가겠다고 운다.
다른 반 수업에 방해가 될
정도여서 하루는 학교에서 아빠한테 전화를 했다 나연이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아빠가 학교로 급히 갔는데 그 사이에 진정이
되었다고 했다.
다음날 다시 악을 쓰고 울고 아빠를 떨어지려 하지 않고 도무지 달랠 방법이 없어서 집으로
데려왔다.
아빠가 너무나 마음 아파했다.
낳았다고 다 아빠가 되는 것은 아닌 듯 하다.
여기 와서 정말
아빠라는 존재가 무엇인지 많이 느끼는 듯하다.
집에 온 아이에게 화를 내고 배고프다는 아이를 "일일부작이면 일일 불식이라"는 어려운
한문까지 써가며 두끼나 굶기고 물도 안 주고 하루 종일 말 한마디 안하고 눈길 한번 안 주고 고문을 했다.
그 후로는 학교
안가겠다는 소리는 안 하고 겉으로는 웃으면서 씩씩하게 차를 타지만 마음 속까지야 즐겁지는 않겠지?
무슨 교실이 칸막이도 없이 벽도
없이 복도도 없이 그렇게 만들어 놓았는지 모르겠다.
우리나라 열린 교실이라는 게 미국에서 본받았나?
옆 반에서 수업하는
소리가 다 들린다.
보호자로 따라온 엄마 4명과 아빠 1명과 아이들이 차를 타고 농장에 도착했다.
나연이는 한없이 내
치마만 잡고 늘어진다.
다른 아이들과 같이 줄 서라고 해도 말을 안 듣는다.
돼지며 황소개구리며 악어며 여러 동물들을
보고 만지고 암소의 젖까지 짜보고 크로우 피시라는 가재까지 낚시로 잡았다.
토끼장에서 다른 아이들은 무서워하는데 나연이는 토끼를 두
마리나 잡고 모처럼 만에 신나서 웃었다.
점심을 먹으러 경운기를 타고 이동했다.
도시락 때문에 굉장히 고민을 많이
했었다.
김밥을 쌀까 샌드위치를 만들까 햄버거를 사 갈까하다가 머핀 몇 개와 과일을 싸서 갔는데 우리가 제일 진수
성찬이었다.
다른 아이들은 과자 몇 개와 물이 전부였다.
선생님 과일도 싸갔는데 여기는 선생님 것 안 챙기는 분위기 인
것 같아서 다시 가방 속에 넣었다.
앞으로 도시락 싸오라고 할 때 긴장 안 해도 되겠구나.
여기 와서 첫 번째 얻은
수확이다
나연이 옆 반 선생님이 어떤 엄마를 내 옆에 데려다 준다.
그 엄마 왈 "한국 분이세요?" 얼마나 반가운
언어인가?
회사관계 부인들은 많이 만났지만 같은 학교 엄마는 처음이다.
너무 반가워 전화번호를
교환했다.
여기 온지 8개월 째란다.
아이들은 시간이 가면 언어 문제가 다 해결되니 걱정하지 말라고
한다.
언제 한번 집에 초대해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어야겠다.
여기 와서 얻은 두 번째 커다란
수확이다.
일정이 끝나고 버스를 타고 다시 학교에 돌아왔다.
부활절 주간이어서 학교에 미리 플라스틱 달걀 12개에
사탕이며 지우개며 껌 같은 것들을 넣어 보냈다
학교 잔디 마당에 그것들을 뿌려 놓고 아이들에게 마음대로 12개를 줍게
했다.
아이들이 너무 즐거워하며 무엇이 들었을까 궁금해하며 열어본다.
egg hunt를 마치고 부활절 주간이라 금 토
일 월요일이 휴교라는 소리까지 알아듣고 하교하려고 학교버스에 올랐는데 나는 타지 말라고 한다.
참 인심 야박하다.
할
수 없이 나연이 데리고 집까지 걸었다.
총 맞을까 두리번거리면서.
여하튼 몸으로 부딪친 까닭에 여러 가지를 얻은
하루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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