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남자에 대해

첫 영성체 하던 날.

김 정아 2003. 4. 29. 03:30

4월 20일 일요일
오늘은 원석이가 첫 영성체를 하는 날이다.

우리 부부가 작년 12월 15일 세례를 받았고, 우리 큰 아이는 작년 9월부터 첫 영성체 반에서 공부를 하기 시작해 지난주 토요일에 스테파노란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고, 오늘 드디어 영성체를 모시게 되었다.

난 아직 믿음이 깊은 신자는 아니지만 아이가 세례를 받을 때 눈물이 핑 돌만큼 감동을 받았다.

우리가 이곳에 오지 않았다면 우리 가족 모두 주님이란 존재를 알 수 없었을 것이다.

그저 일상에 지쳐 일요일은 오직 쉬고 싶은 생각으로 보냈을 것이다.

16명의 아이들이 하얀 드레스와 하얀 와이셔츠, 양복바지를 받혀 입고 양쪽에 부모 손을 잡고 등장했는데 첫 영성체가 이토록 중요한 의식인줄은 미쳐 몰랐다.

가운데 아이를 두고 부모가 같이 나갔는데 난 오늘도 혼자다.

사실 이렇게 중요한 날은 언제나 아빠가 없었다.

작년에 처음으로 이곳의 학교에 입학하는 날도 아빠가 없었고, 이사를 하면서 하우스 계약서에 서명하는 날도, 한달 간 지내다 부모님이 서울로 돌아가시던 날도, 남편은 항상 자리를 비웠다.

몇 주전에 영성체 반에서 회의를 했었다.

영성체 하는 날 아빠들에게 비디오 찍는 사람, 사진 찍는 사람, 교실 정리하는 사람 등등으로 역할을 분담했었는데 난 아무 것에도 손을 들지 못했다.

가장 필요할 때 항상 우리가족과 떨어지게 되는 사람을 중요한 역할에 넣을 수가 없어 다른 사람들에게 눈치가 보였지만 끝까지 손을 올리지 못했다.

역시나 나의 안목은 틀리지 않는다니까!

남편은 로스 앤젤레스, 포틀랜드, 시에틀에 출장을 가고 없다.

사업차 타주에 나가있던 아빠들도 오늘은 다들 와서 아이의 첫 영성체를 축하해 주었는데, 아이는 자기만 아빠가 없는게 서운한 모양이다.

"왜 나만 아빠가 없어?"한다.

아이 앞에서 달리 나는 할 말도 없다.

못 들은 척 하고 있을 수 밖에.

나도 오늘은 아이 덕분에 봉헌을 하게 되는 영광을 안았다.

학급에서 뽑힌 남녀 학생 한 명씩과 그들의 부모가 봉헌을 올렸는데 이런 기회가 아니면 내가 언제 그런 일을 해 볼까 싶다.

아이가 훌쩍 커 버린 느낌이다.

집에 와서는 "드디어 해 냈다!"하며 와이셔츠를 벗는다.

워낙 소심한 아이인 지라 자기 딴에도 사람들의 시선과 ,남들 안 하는 역할하나를 더 하니 좀 벅찼나 보다.

부디 주님의 말씀으로 살며 ,바르고 건전한 성인으로 성장하길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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