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남자에 대해

4일간의 긴 연휴

김 정아 2003. 4. 29. 03:29

4월 18일 금요일

부활절 연휴가 시작되었다.

기독교 신자는 아니었지만 학교에 근무하면서 해마다 3월 말 ,4월이 되면 학생들이 색도 칠하고 예쁘게 포장한 삶은 계란을 가져다주곤 했다.

웬 계란이냐고 물으면 아이들은 부활절이라서 만든거라고 대답했다.

그런가보다 하고 그냥 넘어갔는데 여기 와서 보니 부활절은 이들에게 많은 의미가 있는 날이다.

워낙 기독교에 뿌리를 두고 탄생한 나라이니 만큼 학교는 금요일부터 그 다음 월요일까지 휴교에 들어가고 관공서를 제외한 많은 회사가 휴무를 한다.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생각하며 경건하게 보내는 듯하고 또 다른 사람들은 연휴를 이용해 가족 여행을 가기도 한다.

우리도 이번 연휴는 이틀정도는 여행을 하고 일요일은 성당에 가서 경건하게 미사 보며 지내고 싶었는데 여행은 포기를 해야 했다.

서울에서 출장자가 왔다.

부활절 분위기가 다소 느슨한 L. A에 가서 부활 연휴기간 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설날이나 추석처럼 이들에게 의미 있는 날이니 출장을 좀 연기하라고 했다는데 회사 일이 내 맘처럼 되는 것은 아니다.

출장 나온 사람도 우리 가족에게 무척 미안해했다. 자기 의지가 아니라면서.

그러나 여기까지 우리를 보내준 회사에 감사한 마음을 항상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런 정도의 개인적 희생은 기쁜 마음으로 감수 할 수 있다는 게 우리 부부의 일반적인 생각이다.(아부성 발언임을 짐작하시겠죠?)

단지 남편의 건강이 염려될 뿐이다.

작년엔 갓 부임하여 일이 손에 익지 않아 힘들었고 더구나 엄청난 불경기에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었다.

한 번 눈감으면 아침이 올 때까지 죽은 듯 자던 사람이, 잠 못 이루는 밤이 많아지게 되었다.

일이 적어지면서 밤 9시전에 퇴근하는 일도 있게 되었다.

서울에선 새벽 12시 전 귀가도 한 달에 다섯 번 넘기가 힘들 정도였다.

11시 쯤 귀가하는 남편에게 "오늘은 왜 이렇게 일찍 왔어요?"라고 말하고 나서 혼자 웃기도 했다.

11시가 빠른 거라고?하면서.

한국에서 그렇게 바라던 빠른 퇴근도 점차 불안감으로 작용하기 시작했다.

지사장이라는 직분과 불경기에 대한 엄청난 중압감으로 7Kg이 넘는 몸무게가 빠지면서 바지가 돌아갈 지경까지 갔었다.

2003년을 맞이하면서 상황이 서서히 호전되더니 이라크 전쟁과 맞물려 이젠 물건이 없어 못 팔 정도로 바빠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퇴근 시간이 밤 10시를 넘기는 경우가 일주일 내내 계속된다.

새벽 2-3시에도 한국에서 전화 오는 일이 다반사며 일요일도 사무실에 출근한다.

너무 바빠서 힘들다고 하소연하는 남편에게 그래도 작년보다 올해가 더 행복한 일이라며 위로하긴 하지만, 작년과 올해를 반씩만 섞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한다.

이렇게 반전된 상황 앞에 우리 부부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갈피를 못 잡는다.

그러나 단언하건데 올해가 더 복된 해임을 어느 누가 인정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