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9일 수요일
서울에서 출장 오신 분과 같이 저녁을 먹는지 꽤
늦는다.
서울에서는 조금 늦으면 전화를 해서 확인하곤 했는데 여기서는 전화하는 게 눈치가 많이 보인다.
늦게 오는 날은 사무실에
있거나 거래처 사람들과 식사를 하거나 하는데 그래도 명색이 지사장인데 안 들어온다고 집에서 전화 해 대면 남편도 상대방도 무안 할 것 같아서
그냥 기다리는 편이다.
남편도 나랑 같은 이유인지 전화가 드물다.
12시가 되는 것을 보고 누웠는데 잠결에 전화를 받았다.
지금
일미정인데 데리러 나오라는 것이다.
가겠다고 대답을 하고 정신을 차려 시계를 보니 새벽 2시가 조금 넘어 있었다.
과장님 부인 댁에
전화를 해서 같이 I-10을 타고 가다 생각해 보니 이상한 게 많았다.
도대체 한식집에서 지금까지 영업을 한단 말인가?
일미정이
아니고 다른 집인가?
남편에게 셀러폰을 계속 해 봐도 받지도 않고 일미정에 전화해도 안 받고 잠결에 잘못 들었나 했는데 과장님 부인도
일미정이라고 들었다고 한다.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는데 핸드폰이 울린다.
지금 토잉 불러서 가고 있으니 집에 가서 기다리라고
한다.
잠자는 사람들 깨워 오라고 한 지는 언제고 토잉을 불러서 가고 있다고?
토잉이 아니고 아마 음주 운전해서 오고 있을 거라
생각하고 정문 앞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음주 운전이라면 사생 결단을 하고 싸울 준비까지 하고서.
음주 운전만 해 봐라. 우리가 그냥
두나. 두 남자 오늘 임자 만났다.
그래서 정문 앞 길가에 차를 세우고 시동을 끄고 라이트까지 꺼 놓고 눈을 커다랗게 해서 차를
기다렸다.
그런데 웬걸 ?
커다란 트레일러가 구급차 못지 않은 사이렌에, 반짝 반짝 네온사인에 응급상황 못지 않은 모습으로 달려오는데
소나타 Ⅲ는 그 위에 떡 하니 버티고 있고 세 남자는 정신 나간 모습으로 졸고 있는 게 보인다.
한참을 기다려도 들어가지
못한다.
아파트 비밀 번호를 기억하는 사람이 없어서 문이 열리지 않는 것이다.
엄청나게 취하긴 취했나보다.
평소엔 그렇게 잘
누르던 비밀 번호까지 잊어 버렸으니.
내가 나가서 비밀 번호를 눌러주니 그때서야 안으로 들어간다.
과장님도 집으로 돌아가고 토잉 차도
돌아가고 내가 운전석에 앉아 출장자 호텔에 모셔다 드리고 집에 오려니 남편은 사무실로 가자고 한다.
이 시간에 사무실은 왜 가?
할
일을 못해서 한 두 시간쯤 더 일을 해야 한다나?
기가 막혀서.
제 몸 하나 못 가누고 아파트 정문 비밀 번호조차 기억 못하는 사람이
무슨 일을 해?
집에 돌아가자고 사정을 해도 막무가내다.
내 남편 고집을 누가 막아?
어쩔 수 없이 사무실 주차장에서 남편은
휘청거리는 걸음으로 사무실로 들어가고 난 화가 나서 씩씩거리다 혼자 차 몰고 집에 가버릴까 하다가 집에 가는 길을 알아야지!
아이들 잘
자고 있나 걱정도 되고 남편이 일은 잘하고 있나, 그대로 책상에 엎드려 자고 있지는 않나 걱정도 되고 꽤 시간이 흘렀는데 남편이
나온다.
아무래도 일을 오랫동안 하기는 무리였나 보다.
그렇게 해서 집에 돌아오니 새벽 4시가 가까워져 있었다.
별난 남편 덕에
별일을 다 겪는구나.
*휴스턴엔 한인이 많은 편이라 한식집도 여러 군데있고 큰 한국 마켓도 꽤 많은 편입니다.
주위의
오스틴이나 뉴올리언즈같은데서 4시간씩 걸려 장보러 오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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