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남자에 대해

편도 20시간 걸려 자동차를 운전해 출장을 떠나다.

김 정아 2003. 1. 11. 01:25
6월 18일 화요일

남편은 새벽부터 일어나 왔다갔다 부산스럽다.

오늘 6시30분에 축구가 시작되었다.

원석이까지 깨워 모두 거실에 앉아 축구를 봤다.

"8강 진출? 당신 꿈도 꾸지 마. 마음 비우고 봐! 16강도 너무 잘 한 거잖아 그리고 회사 늦지 말고 가!"

그리고서 1대 0으로 지고 있는 상황에서 아이들 데려다 주고 학원에 갔다.

학원 선생님이 들어오자마자 한국이 1대 1로 비기고 있다고 전해준다.

미국 사회는 워낙 축구가 비 인기 종목이었는데 8강에 오르자 관심을 좀 나타내는 것 같다.

스포츠 채널에서는 계속 축구 재방송을 해주고.

여하튼 반수가 한국인이니 선생님의 말이 너무나 반가울 수밖에 없다.

꽉 차야 하는 교실이 오늘은 많이 비었다.

한국사람이 많이 안 온 것이다.

그러더니 나중에 한 분이 흥분된 얼굴로 들어오더니 한국이 이겼다는 것이다.

꿈인가 생신가 확인하고 또 확인 해 봐도 정말 이겼다는 것이다.

응원석을 꽉 채운 붉은 물결에 감동했는데 그 감동이 다시 몰려온다.

휴스턴도 응원 물결이 대단했다고 한다.

당구장에 모여 빨간 티를 입고 계속 응원을 했다고 한다.

미국이 축구에 관심이 많은 나라라면 더 으쓱댈 수 있었는데 안타깝다.

이곳 유명일간지 스포츠 면에 실린 대목이 생각난다.
우리가 포루투칼을 이겨서 미국이 어부지리로 8강에 들었을 때 "Thank you , Little Brother Korea"라고 한 것을 보고 남편과 얼마나 분통을 터트렸던가

언젠가 미국과 다시 맞붙게 된다면 Little Brother 소리 못 나오게 해야 할텐데.


6월 23일 일요일

남편의 강요에 못 이겨 교리 공부를 시작하고 성당의 미사를 참석하곤 했는데 오늘은 혼자 갔다.

남편은 어제도 전화해서 일요일에 꼭 성당 가라고 하더니 오늘 아침에는 모닝콜까지 해서 빨리 일어나 준비하고 성당에 가라고 난리다.

그러더니 오후에 전화해서 또 확인한다.

성당 다녀왔느냐고.

남편은 열심이다.

생각 날 때마다 기도도 하고.

어제 남편은 테네시 주로 출장을 갔다.

지도를 보니 켄터키 주 바로 아래 위치 해 있다.

출장 명령이 급하게 나는 바람에 비행기 표를 구 할 수 없었다.

편도 20시간 가까이를 운전해서 가야 한다는 소리를 듣고 기절 할 뻔했다.

걱정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는데 어쩌면 기회가 흔한 것도 아닌 자동차 여행을 즐기겠다는 생각도 있는 것 같다.

대한 민국에 40시간 걸려서 다녀올 데가 있었다면 남편도 그런 무모한 일을 굳이 감행하려 하지 않았을 것이고 나 또한 강경하게 말렸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 넓은 대륙에 와서 이런 경험을 한 번쯤 해 본다는 것도 과히 손해 보는 일은 아닌 것 같다.

젊지도 않은 38, 39세의 두 남자가 승용차에 골프채, 조깅화, 라면, 김치까지 아이스박스에 넣고 놀러 가는 듯한 복장으로 신나게 차에 오르는 것을 보고 마음이 조금 놓이긴 했지만 왕복 40 시간이 결코 장난은 아니지.

어제 오후 1시에 출발했는데 아직도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했다고 한다.

오늘 새벽 2시쯤 길거리에 있는 모텔에 들어가 한숨 눈을 붙이고 아침엔 운동하러 간다고 전화가 오더니 오후 8시 현재까지도 가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그나마 과장님이랑 운전을 교대할 수 있어 다행이다.

월요일 아침 4시간쯤 일을 하고 다시 운전해서 화요일 밤쯤 도착한다고 하니 대단한 모험이다.

애써서 구한다면 이 넓은 휴스턴의 여행사에서 비행기표 한 장쯤이야 못 구할 것도 없을 텐데 .

더 나이 들면 하라고 등 떠밀어도 못 할텐데 마음 그만 졸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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