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미국적인..

미국에 사는 지혜 한가지.

김 정아 2003. 2. 14. 04:11

2월 7일 금요일

미국 사는 지혜 하나를 터득했다.

하우스로 이사 온 후로 각 사회단체에서 기부금을 내라는 전화가 하루 한 통 이상씩 온다.

처음에는 중요한 전화인줄 알고 남편 휴대폰 번호를 가르쳐 주고 직접 통화하라고 했는데 거의 자선 단체에 관계된 전화다.

그 이후에 그런 전화가 오면 영어 공부다 싶어 끝까지 다 듣고 난 다음에 꼭 내가 하는 말이 있다.

"I can not speak English"

그러면 두 말없이 "thank you!"라고 하며 전화를 끊는다.

또 자선 단체에서 집으로 찾아오는 경우도 많고 뭔가 물건을 팔려고 찾아오는 사람도 많다.

이런 경우에도 내가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I can not speak English"하면 끝이다.

그러나 오늘 월마트에 가서 내 이런 방식이 통하지 않은 사람을 만났다.

물건을 사서 트렁크에 싣는데 히스패닉으로 보이는 늙은 아주머니가 내게 다가오며 말을 걸었다.

들어본 즉 차에 개스(여기는 차 기름을 모두 개스라고 표현한다)가 없는데 자기를 도와 달라는 것이다.

"I can not English" 라고 했는데도 그 아주머니는 포기하지 않고 자동차 주유구까지 가리키며 날 설득했다.

사실 난 개스가 없다는 말을 믿지도 않았고 (차를 가지고 있을 것 같지 않았다.)한눈에 Homeless라는 걸 알았다.

도와주면 좋겠지만 난 여기에 사는 대가(代價)로 눈 돌아갈 만큼 엄청난 세금을 내기 때문에 그 다음은 이 미국이란 나라가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계속 못 알아듣겠다는 표정을 지어도 막무가내다.

'그래, 내가 당신에게 영어 공부한 셈치고 주마' 라
고 속으로 생각하고 2불을 주었더니 고맙다며 갔다.

그리고서 '저 아줌마가 어떻게 하나 보자' 라고 차안에 앉아서 살펴보고 있으니 계속 어수룩한 동양 사람한테만 접근하는 것이다.

나처럼 돈을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그 2불이 아깝진 않았다.

진짜로는 "I can not speak English"라는 말을 쓰지 않게 될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내가 귀찮은 일을 당 할 때는 빼고.

마켓에서 돌아오다 앞집 새댁을 만났다.

우리 나라에서는 예전에 아이를 낳으면 금줄을 쳤었다.

이 나라도 우리와 비슷하다.

앞집에서 며칠 전에 정원에 깃발을 걸고 남자아이를 낳았다고 팻말을 꽃아 두었었다.

아이의 이름과 태어난 날을 적어서.

처음 보는 미국인 새댁인데 내가 먼저 인사를 했다.

가만 보면 나도 참 무식하다.

영어도 못하면서 길가는 사람 붙들고 아기 낳았느냐고 물었으니.

그 새댁, 자기한테 관심을 가져주어서 내가 너무 고마웠나보다.

가던 길 멈추고 나하고 얼마간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나한테 아이가 두 명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수술을 해서 아이를 낳았는데 이제 겨우 7일 되었다
고 했다.

처음엔 너무 아팠는데 지금은 걸을 수 있다고 한다.

미국은 제왕절개 수술이 드문 편이니 상태가 퍽 안 좋았었나 보다.

첫 아이라 너무 행복하다고 한다.

언제 우리아이들 데리고 자기 집 아들 보러 오라고 한다.

미국 사람 말이 어디까지 진실이더라?

정말 진심에서 우러나와서 오라고 했는지 인사말인지 알 수가 없다.

하긴 그건 중요하지 않다. 어떻든 갈 생각은 없으니까.

내 이름을 물어 가르쳐 주었더니 자기 이름은 kim이란다.

우리 교재에 가족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면서 식구들의 이름이 나오는데 아이의 이름이 kim이라고 되어있었다.

그래서 내가 옆에 앉은 한국 사람에게 흉을 보았다.

무식하게 남의 성을 이름으로 쓰냐? 이 책 지은 사람 바보 아니냐? 동양에 대해 너무 무지한 것 아니냐? 했었는데 kim이라는 이름을 실제로 만나다니.

내 last name이 김이라고 했더니 자기 이름은 가장 쉬운 걸로 짓고 싶어서 부모가 지어주었다고 한다.

그 아줌마 이름은 평생을 가도 잊어버리지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