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1일 수요일
어제 아이들이 "엄마, 내일은 빨강이나 파랑이나 하얀색 옷 입고
오래" 한다.
"왜?"
"이유는 모르겠어."
무슨 행사가 있는 날인가? 사진은 어제 찍었고 P. E시간도
끝났고 그렇다고 무슨 안내장이 온 것도 아니고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침에 하얀색 파란색 티셔츠를 꺼내 입혀주었다.
그러더니 남편도
"여보, 파란색에 하얀 줄무늬 들어가 있는 와이셔츠 어디 있어?" 한다.
아니, 아이들에 남편까지 왜 계속 파란색에 하얀색
타령이냐? 무슨 약속이나 한 것처럼.
"오늘 이상하네 ? 오늘 무슨 날이야?"
"오늘 9.11이잖아. 권장
사항이래"
아하. 오늘이 1주년 되는 날이구나.
성조기의 색깔인 빨강이나 파랑이나 하얀색 옷을 입기로 권장하기로 한
모양이다.
아이들은 학교 다니니 그런 색을 입어야 하고 남편은 미국사람들과 만나 비지니스를 하려면 그런 색을 입어야
하고.
이 땅에 거주하는 이상 이 사람들과 보조를 맞추어야 할 것 같아 나도 빨간색 옷을 입고 학교에 갔다.
悼에
빨간색이라니!
우리나라 같았으면 뺨 맞겠다.
영어 선생님도 성조기가 그려진 파란색 셔츠를 입고 왔는데 다른 모든
사람들은 거의 신경을 쓰지 않고 알록달록 등등 평소랑 똑 같이 하고 왔다
T.V에서는 래리 킹 같은 저명 인사들이 나와 요즘 계속
9.11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지대한 관심사인 것만은 틀림없는 것 같다.
처음 여기 왔을 때
많은 차들의 뒤 부분에 성조기가 걸려 있어 왜 그러나 했는데 9.11추모 의식이라는 걸 알았다.
우리나라는 잠깐 그랬다 마는데
여기는 꾸준하다.
1년이 지나가는 지금도 차들이 성조기를 달고 다니고 미국인 집 앞에도 커다란 성조기가 걸려
있다.
학교에서는 아침마다 성조기에 대한 맹세를 하고
국가가 나오고 그런 덕에 우리 아이들도 다 외웠다.
여기 올
때 태극기도 정성스럽게 싸서 가지고 왔는데 한번도 걸어 보지 못했다.
현충일에도 광복절에도.
주위의 분위기가 태극기를
걸어 놓으면 불순분자 취급할 것 같고 굳이 이들의 정서를 헤쳐서 좋을 게 없을 것 같기도 했다.
그리고 가끔 유색인종이 무조건
싫다며 테러하는 사람들의 표적이 되어 화를 자초할 필요도 없는 것 같다.
태극기는 잘 보관했다 한국에 돌아간 다음 열심히
걸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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