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미국적인..

미국에서 맞는 9.11 일주년

김 정아 2003. 1. 11. 01:03

9월 11일 수요일

어제 아이들이 "엄마, 내일은 빨강이나 파랑이나 하얀색 옷 입고 오래" 한다.

"왜?"

"이유는 모르겠어."

무슨 행사가 있는 날인가? 사진은 어제 찍었고 P. E시간도 끝났고 그렇다고 무슨 안내장이 온 것도 아니고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침에 하얀색 파란색 티셔츠를 꺼내 입혀주었다.

그러더니 남편도 "여보, 파란색에 하얀 줄무늬 들어가 있는 와이셔츠 어디 있어?" 한다.

아니, 아이들에 남편까지 왜 계속 파란색에 하얀색 타령이냐? 무슨 약속이나 한 것처럼.

"오늘 이상하네 ? 오늘 무슨 날이야?"

"오늘 9.11이잖아. 권장 사항이래"

아하. 오늘이 1주년 되는 날이구나.

성조기의 색깔인 빨강이나 파랑이나 하얀색 옷을 입기로 권장하기로 한 모양이다.

아이들은 학교 다니니 그런 색을 입어야 하고 남편은 미국사람들과 만나 비지니스를 하려면 그런 색을 입어야 하고.

이 땅에 거주하는 이상 이 사람들과 보조를 맞추어야 할 것 같아 나도 빨간색 옷을 입고 학교에 갔다.

悼에 빨간색이라니!

우리나라 같았으면 뺨 맞겠다.

영어 선생님도 성조기가 그려진 파란색 셔츠를 입고 왔는데 다른 모든 사람들은 거의 신경을 쓰지 않고 알록달록 등등 평소랑 똑 같이 하고 왔다

T.V에서는 래리 킹 같은 저명 인사들이 나와 요즘 계속 9.11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지대한 관심사인 것만은 틀림없는 것 같다.

처음 여기 왔을 때 많은 차들의 뒤 부분에 성조기가 걸려 있어 왜 그러나 했는데 9.11추모 의식이라는 걸 알았다.

우리나라는 잠깐 그랬다 마는데 여기는 꾸준하다.

1년이 지나가는 지금도 차들이 성조기를 달고 다니고 미국인 집 앞에도 커다란 성조기가 걸려 있다.

학교에서는 아침마다 성조기에 대한 맹세를 하고
국가가 나오고 그런 덕에 우리 아이들도 다 외웠다.

여기 올 때 태극기도 정성스럽게 싸서 가지고 왔는데 한번도 걸어 보지 못했다.

현충일에도 광복절에도.

주위의 분위기가 태극기를 걸어 놓으면 불순분자 취급할 것 같고 굳이 이들의 정서를 헤쳐서 좋을 게 없을 것 같기도 했다.

그리고 가끔 유색인종이 무조건 싫다며 테러하는 사람들의 표적이 되어 화를 자초할 필요도 없는 것 같다.

태극기는 잘 보관했다 한국에 돌아간 다음 열심히 걸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