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구경하기

시골 마을의 페스티벌구경과 state park

김 정아 2010. 7. 26. 07:51

2010년 7월 17일 토요일

화영이 집에서 1시간 30분쯤 걸린다는 'Letchworth  State Park'에 가려고 길을 나섰다.

하루에 10시간씩 운전한 것에 비하면 1시간 30분 거리는 일도 아니어서 아침 느즈막히 출발을 했는데 가는 도중에 느닷없이 교통 경찰이 나와서 길을 막고 우회하라는 것이다.

 

우리는 영문도 모르고 우회를 하라니 막히지 않은 길을 따라 운전을 했는데 Leroy라는 작은 시골 마을에 들어서게 되었다.
그런데 이게 왠 떡인가 싶게 일년에 한 번 있는 그 동네의 페스티벌이 진행되는 날이었다.
그래서 도로를 막고 퍼레이드가 막 시작되고 있었던 것이다.

뜻하지 않은 곳에서 우리는 미국의 한 모습을 볼 수 있었을 것 같아 주차를 하고 그들의 축제에 동행해 보기로 했다.

큰 강줄기가 길게 흘러가는 동네엔 여유로움이 묻어나고 시골이어서 그런지 백인 외의 인종들이 정말 눈에 띄지 않았다.

난 딱 한명의 동양 청년을 보았다.

동양인 우리 12명이 오히려 그들의 구경거리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우리는 그들의 페스티벌을 구경하고 평소엔 입장료를 내야 하는데 오늘은 공짜라고 해서 Leroy House를 구경했다.

이 마을에 아주 큰 영향을 끼쳤던 인물의 집을 박물관으로 개조해 만들었고 젤로 박물관도 덤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이렇게 여행 중에 뜻하지 않은 보너스를 받은 것 같아 중도에 길이 막힌 것을 아주 다행스럽게 생각하기도 했다.

 

이제 퍼레이드도 끝나서 다시 우리의 목적지를 향해 공원에 도착했다.

Letchworth  State Park은 하이킹을 할 수도 있고, 카노와 카약등 수상 스포츠를 할 수도 있고, 5킬로미터 달리기라든지,낚시를 가르쳐 주는 등 여러가지 이벤트도 있고 박물관과 숙박시설도 갖추어진 종합 레저 타운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미국 사람들의 취향에 딱 맞는 공원이다.

한곳에서 여러 날을 묵으면서 여유를 가지고 즐기는 이들에게 이곳은 여러가지 장점들이 무척 많은 곳임에 틀림없다.

특히 화영이 말에 의하면 3단 폭포가 장엄하다고 하고 비라도 오는 날엔 선명한 무지개가 황홀하게 피어나는 곳이라 해 기대를 갖게 했다.

점심 시간이 늦어져 우리는 가지고 온 음식으로 점심 겸 저녁을 먹고 upper fall, middle fall을 구경했다.

 

특히나 폭포를 지나 계곡이 흐르는 양쪽 벽면은 오랜 시간 풍화와 침식으로 층을 이루고 있었는데 마치 그랜드 케년의 한 부분에 와 있는듯한 느낌을 갖게 했다.

어제 나이아가라를 보지 않았다면 두 폭포 역시나 웅장함을 더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 짐을 정리하고 마지막으로 폭포 아주 높은 위쪽으로 기차길이 지나는데 그곳을 한 번 가보아야하지 않느냐고 해서 주차를 하고 그 기차길을 찾아 갔다.

그런데 우리 눈에는 들어가는 입구를 찾지 못해 돌아나왔는데 미국인 가족이 자기들을 따라오라고 해 가게 되었다.

 

그 기차길에 지금도 기차가 지나는지 어쩐지 정보도 모르고  1800년도 어느 시대에 지어진 유서깊은 기차길이라고 하고 위에서는 폭포가 엄청 잘 보여 장관이라고 했다.

출입금지구역이라고 쓰여 있는 것 같은데 미국인들을 따라가는 것이 너무나 찜찜하고 고소 공포증이 있는 사람도 있었지만 중간에 돌아갈 수가 없어 속도를 내어 저 끝까지 갔다.

 

그런데 표지가 갑자기 'no passing, danger'라고 되어 있는 것이다.

우리는 그 말을 듣지 않고 기차길을 건너온 것이 너무나 후회가 되어 다시 빨리 왔던 곳으로 건너가자고 서둘러 끝부분에서 돌아가려고 했는데 난데없이 노란 불빛을 밝히며 경적을 울리며 기차가 다리 안으로 들어오려는 것이 보이는 것이다.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공포에 질려 소리 소리 질러가며 "얘들아, 뛰어"하면서 다시 끝부분으로 달려갔다.

달려가서도 화영이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옆드려! 빨리 엎드려!" 하면서 갑자기 반공훈련이 되어 버렸다.

이 화물열차는 100량 정도가 되는지 그 다리를 다 건너기까지 20분이 넘게 걸렸다.

기차가 지나고서야 우리는 그 상황이 너무나 웃겨 서로 배꼽을 잡아가며 눈물까지 흘려가며 웃었다.

 

같은 상황에서도 각자 생각했던 것이 너무나 달랐다.

화영과 마리아는 기차의 속도때문에 원초적으로 사람이 죽을 수 있다는 공포감에 시달렸고, 나는 출입금지 구역을 출입했단 이유로 혹시나 경찰에 붙들려 가지나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고, 영란언니는 그나마 차분해서 다리의 난간을 꼭 붙들고 있으면 아무 일이 없을 거란 생각을 했고, 스테파니아 언니는 뛰어 라는 소리에 벗은 신발을 움켜 쥐고 정신 없이 뛰었다.

그 사건을 겪고 나서 우리의 결론은 하나였다

 

절대 하지 말라는 짓은 안 하는 것이라고.
미국 아저씨가 자기는 100번도 더 이 다리를 건너 수영장에 갔기때문에 안전하다는 말을 했어도 우리가 판단을 했어야 했는데 그 아저씨 말만 믿고 다리를 건너다가 그런 황당한 일을 당한 것이다.

그 때 당시는 공포였지만 차 안에 들어와서 집에 갈 때까지 우리의 화제는 단연 '기차'였다.


 

 *동네 페스티벌에 할아버지들도 신나셨습니다. 미니카를 타고 즐거워하십니다.

 

 

 

 

*어린 소녀가 사탕을 엄청 많이 던져 주더군요. 우리 아이들도 신나서 사탕을 받았습니다.

 

*치어리더 여학생이 길을 오면서 계속 덤블링을 하더군요.

 

*젤로 박물관안에 저런 차가 있더군요.

 

*케딜락 1908년 모델도 보이고요.

 

*젤로 박물관 입구에서 한 장 찍었습니다.

 

*리로이 마을의 거라지 세일모습입니다. 


*공원에서 단체 사진 한 장찍었습니다. 뒷 배경도 엄청 멋지지요?

 

*공원안의 폭포입니다.다들 사진발이 잘 받습니다.



 

*저 기차길에 기차가 다니지 않을 줄 알았습니다. 중간에 기차를 만나 아주 혼비백산했습니다. 기차를 만나면 기차에 빨려 들어가 죽게 되는 줄 알았답니다. 제 친구 화영이가요.

아이들의 평안하던 이 얼굴도 기차를 만나 어른들이 아우성을 치는 바람에 공포에 떨었답니다.저 뒤로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건너가긴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