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아이의 미국생활

아들의 첫 면도기

김 정아 2008. 8. 9. 03:37

2008년 8월 6일 수요일

원석이는 8월 5일부터 마칭밴드 연습에 나가기 시작했다.

개학이 8월 25일이니 자그마치 20일간이나 빨리 방학을 반납하고 밴드 연습을 시작한 것이다.

특히 올해는 2년에 한 번 열리는 큰 규모의 마칭 밴드 경합이 있어서 열심히 해야 하는 분위기다.

아침 8시에 갔다가 12시에 끝나면 데리고 와서 점심을 먹이고, 1시 30분에 데려다 주었다가 두 시간 연습하고 3시반에 다시 데리러 가야 한다.

그리고 5시부터 8시까지 또 연습이니 하루 9시간을 마칭 밴드 연습에 매달려야 한다.

그동안 좀 하얗게 되었던 피부가 이번 12월까지는 거의 흑인에 가까울 만큼 검어지게 된다.그리고 나서 마칭 시즌이 끝나면 다시 원래 상태로 돌아온다.

그런데 이제 11학년이 되면 SAT 시험도 준비를 해야 하는데 시간이 없으니 정말 걱정이다.

개학하고 평일이라도 예외가 아니어서 3시부터 8시까지 마칭 밴드를 하고 나면 몸이 너무 힘들어 그대로 곯아떨어지게 되는데 SAT준비할 시간이 있을 지 모르겠다.

정말 밴드부가 이렇게 바쁜 줄 알았다면 안 시켰을 텐데 후회막심이다.

그래도 이런 경험이 인생을 살아가는데 돈으로 주고도 살 수 없는 귀한 체험이될 것이고 ,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이겨낼 수 있는 바탕이 될거라고 생각한다.

나만 이렇게 걱정하지 사실 아들 녀석은 SAT 걱정도 없고 또 즐겁게 마칭 밴드에 나간다.

 

이 녀석이 11학년이 되더니 남자 냄새를 풍기기 시작한다.

지 아빠 면도기를 들더니 수염을 깎는다고 면도크림 까지 발라가며 흉내를 내는 것이다.

흉내를 내는 것인지 진짜로 깎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이제 저도 자기 면도기와 면도크림이 필요하다며 사다 달라고 한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친정 남동생들이 고등학생 때 면도를 했던 것 같지 않은데 이 녀석이 빠른 건지, 다들 이때 쯤 면도를 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면도기가 필요하다는 말에 웃음이 절로 나온다.

 

아주 어릴 적 시골에서 시부모님과 자라던 아이는 방학 때면 서울에 올라 우리와 같이 지냈는데 처음에 얼마나 낯을 가리던지 나한테만 오면 할머니한테 가겠다고 발버둥을 치며 내 품을 달아나려고 했었다.

거실에서 안 방 문턱을 안 넘어 오면서 왠 옆집 아줌마 보듯이 나를 바라 보았던 녀석이 이렇게 커서 면도기가 필요하다니 시간이 이렇게 흘렀나 싶다.

 

오늘 아이의 면도기와 면도크림을 사러 나갔었다.

첫 면도기니 아빠가 골라주면 좋으련만 남편은 오늘도 출장이다.

처음 시작하는 아이에게 어떤 면도기가 좋은지 한참을 쳐다 보다가 그래도 가장 비싼 것이 안전하지 않을까 싶어서 골랐는데 건전지가 있는 것이다.

남편이 건전지가 들어가는 면도기를 쓰는 것을 본 적이 없어 내려 놓고 남편이 쓰던 눈에 익숙한 것을 골라 들었다.

면도 크림도 가장 순할 것 같은 것을 골랐는데 어떨지 모르겠다.

 

이 녀석이 이제 이렇게 청소년기를 넘어가고 있나 보다.

그러고 보니 내 품을 벗어나는 것도 이제 2년 밖에 안 남았구나.

그 동안 서로 사이좋게 지내자, 아들아!

그리고 아들아 ,네 살은 깎지 말고 네 수염만 잘 깎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