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백수 아줌마

오랫만에 추석답게 지내보고.

김 정아 2006. 10. 8. 10:09
 

2006년 10월 7일 토요일

추석이 나와 아무 상관이 없는 듯 모르고 있다가 이번 수요일에서야 친구가 추석 제사 음식 준비한다는 소리를 듣고 “추석이 언젠데?” 하고 물었다가 핀잔만 잔뜩 들었다.

“언니, 아무리 한국을 떠나왔어도 추석이 언제인지도 모르고 있었다니 너무 한 거 아니야?” 라고.

“어쨌든 고맙다. 너 아니었으면 전화도 못 하고 지나갔을 뻔 했다.” 하고 전화 몇 통 하고 있는데 남편이 올해는 우리도 추석을 좀 지내보자고 한다.

“어떻게 지내?” 했더니 음식 몇 가지 준비해서 새로 온 직원 가족이랑 친구들 좀 초대해서 저녁 식사를 같이 하자고 한다.

싫다는 소리가 목에 걸렸으나 나오진 않았다.

매번 사람들 초대하면 남편이 음식을 다 장만 했는데 오랜만에 한 번 부탁하는데 거절하는 것도 미안하고, 밋밋한 휴스턴 생활에 사람들 초대해 같이 밥을 먹고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도 즐거운 일이긴 하다.

남편은 목요일 밤에 장을 봐다 주고 금요일에 출근을 했다.

 

금요일에 난 도서관에서 수업을 하고 (마침 일찍 끝났다)수퍼에 가서 필요한 몇 가지를 더 사가지고 오니 12시 30분이 넘어 있었다.

그 때부터 시작해 동태전과 호박전을 부쳐 내고, 갈비를 양념하고, 잡채를 만들고 , 홍합과 새우를 그릴에 구워 양념을 하고, 낙지볶음을 하고, 국을 끓이고 온통 정신이 없었다.

그 중간 중간에 나연이와 원석이를 데리러 학교에도 다녀오고 잠시도 쉬지 못하고 혼자서 종종거리다가 겨우 시간을 맞추어 음식을 다 해 놓았다.

모처럼 일찍 퇴근한 남편은 양념한 갈비를 바비큐 그릴에 구워 냈다.

추석이라고 여기저기서 들어온 송편과 떡이 많아 초대 받아 온 유학생에게 제발 송편 좀 가져가서 유학생 친구들과 나누어 먹어달라고 사정을 해서 보내기도 했다.


오랜만에 음식 만드는 일을 너무 많이 해서 피곤했는지 어제 밤에 끙끙거리면서 잤다는 기억이 난다.

아침에도 도저히 못 일어날 것 같았는데 남편이 아침 산책을 같이 하자고 열심히 깨워 따라 나갔다가 남편의 빠른 보조를 못 맞추어 중간에 난 돌아왔다.

그리고 나연이 학원 데리고 가서도 비실비실 하다가, 원석이 마칭 밴드부 데려다 주고 와서 그냥 쓰러져 낮잠이 들었다.


나도 명절 증후군을 겪은 것인가?

한국의 며느리들이 들으면 기절하겠다.

"겨우 그런 정도로 명절 증후군 운운해 !"하면서.

열 시간 넘게 차를 타고 간 것도 아니고 , 시댁 식구들 사이에서 부대낀 것도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 초대해 밥 먹은 걸로 명절증후군이라면 웃긴다. 

한국 떠난 지 5년 만에 추석답게 송편도 먹고, 동태전도 먹으면서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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