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남자에 대해

"여보, 나 오늘 김치 담았어!"

김 정아 2006. 2. 16. 00:06

2006년 2월 10일 금요일

남편이 가기 전에 담은 김치를 다 먹고 이 집 저 집에서 갖다 준 김치도 다 먹고 고민에 빠졌다.

김치를 사서 먹을 것인가? 아니면 담아서 먹을 것인가?

사서 먹자니 딱히 입에 맞는 김치도 없고, 남편도 없이  혼자서 담으려니 도저히 자신이 없어 며칠을 고민하다 힘들어도 내가 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어 마켓에서 배추 한 박스를 사왔다.

차고에 넣어 놓고도 엄두가 안 났다.

아무리 바빠도 여기 있을 땐 남편이 김치를 담아 주었다.

남편의 힘 80%, 내 힘 20%정도 되었다.

남편은 김치 담을 날을 잡아 마켓에 가서 적당한 배추를 고르고 김치에 들어갈 부속 재료들도 꼼꼼하게 잘 골랐다.

네 토막으로 자른 배추를 저녁 무렵에 간을 해 놓고 새벽에도 자다 일어나  여러 차례 뒤집어 기가 막히게 간을 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소금 간 하는 솜씨는 내가 도저히 못 따라간다.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 마늘을 까고, 생강을 다듬고 각종 야채를 씻어 물기를 빼 놓고 무를 강판에 갈아 놓는다.

양파니 마늘을 믹서에 갈아 놓는 것도 남편의 일이었다.

배추의 겉잎을 떼내어 삶아 놓는 것도 잊어 버리지 않았다.

그리고 배추를 깨끗이 씻고 물을 짜주는 것도 남편의 몫이었다.

내가 하는 일은 찹쌀 풀을 쑤고 남편이 갈아준 양념에 고추 가루를 풀고 배추에 양념을 입히는 것이었다.

그래서 아이들은 아빠가 담은 김치라는 표현을 했다.

그렇게 둘이 담던 김치를 혼자 담으려니 온 종일이 걸렸다.

배추 겉잎들은 데칠 엄두가 안 나 다 버리고,적당하게 간을 하는 것이  어느 정도인지 감도 안 잡히고, 각종 야채들을 씻어 놓는데도 시간이 엄청 걸리고, 야채를 믹서기에 가는데도 매워서 눈물이 나오고, 쭈그리고 앉아 배추를 씻는 것도 너무 힘에 부치는 일이었다.

허리가 펴지지 않을 만큼 힘이 들었어도 어찌 어찌해서 끝을 냈다.

맛은 나도 장담 할 수가 없다.

한국으로 전화를 했다.

“여보, 나 오늘 김치 담았다!”

“ 얼마나 담았는데 ?”

“ 한 박스”

“ 혼자 다 했어?”

“그~럼,  원석이는 학교에서 아직 안 와서 내가 다 했지!”

“ 아이구 , 우리 마누라 오늘 너무 힘들었겠네? 고생 많았어!”

“남편, 빨리 와!   앞으로  난 혼자는 김치 절대 못 담겠다.”

 

갑자기 걱정 하나가 불쑥 생각났다.

한국에서 돌아온 남편이 “이제 당신 혼자 김치 담을 줄 아니까 앞으로는 당신 혼자서 해!” 하면 ?

아, 그러면 안 되는데! 아, 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