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미국적인..

한 밤중, 응급실에서

김 정아 2006. 8. 5. 00:08
 

2006년 8월 3일 목요일

일찍 잠자리에 들라고 채근해 아이들은 어제 밤 10시 경부터 누워있었다.

그런데 나연이는 그 때부터 배가 아프다고 하더니 시간이 지나면서부터 심해져 걷지도 못하고 돌아눕지도 못할 지경이 되었다.

아빠 스트레스 받는다고 방에 누워 눈물만 흘리고 소리 내어 울지도 못했었다.

배를 쓸어주고, 따뜻하게 만져 주면서 가라앉기를 기다려도 더 심해질 뿐 나아지지 않아 결국 밤 12시 반이 되어서 아빠와 응급실에 갔다.

배는 아프다고 난리인데 왜 이리도 수속은 더디고 이름도 부르지도 않아 속을 태우게만 했다.


정말 위독한 상황에 오지 않아 다행이다.

만일에 일분일초가 아까운 교통사고 환자가 피를 흘리며 실려와도, 중화상을 입어 일초를 다투는 환자가 와서  이렇게 마냥 기다려야 한다면 결코 생명을 보장 받지 못할 것 같아 무서워졌다.

살면서 그런 경우는 절대 당하지 말아야겠다는 의지가 강해졌다.


체온과 혈압과 몸무게를 재고 엑스레이를 찍고 의사를 기다리는데 아이가 배변이 되지 않아 그랬다는 것이다.

딱딱한 덩어리가 가득 쌓여 배를 압박하고 있어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며 변을 부드럽게 해 줄 알약 하나와 300미리짜리 음료수 같은 약을 주며 집에 가서 먹이라고 했다.

새벽 2시 30분에 집에 돌아와 약을 먹고 간신히 진정이 되어 잠을 청하고 아침이 되어서야 화장실에 들락거리더니 멀쩡해졌다.

예전과 다름없이 오빠들과 장난하고 뛰고 수영장에서도 신나게 놀고 왔다.


남편과 둘이서 맹장인가, 장꼬임인가, 탈장인가 근심을 했는데 이렇게 해결이 되어 천만다행이다.

아이의 음식 섭취가 평소에도 걱정이 되긴 했다.

야채를 너무 싫어하고, 물도 안 마셔 싫은 소리를 해가며 먹어 보라해도 관심이 없더니 앞으로는 좀 나아질지 모르겠다.

이렇게 되기까지는 내 잘못이 큰 것 같다.


그 상황에 남편과 같이 있었다는 게 또한 너무 감사한 일이다.

혼자 있을 때 이런 상황을 만났다면 아마도 응급실에 갈 생각을 못하고 밤새 아이 부둥켜 앉고 울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남편과 같이 살 수 있게 되어 정말 감사했다.


미국의 의료체계가 비싸고 특히 응급실은 엄청나다는 것은 알았지만 오늘 우리에게 청구된 금액은 무려 950불이었다.

남편은 의료보험 회사와 전화를 해 보겠다고 하는데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

미국에 살면서, 하긴 어디에 살더라도 아프지 않고 사는 게 인생 가장 큰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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