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구경하기

당황스러운 미 합중국의 수도 워싱턴 D.C

김 정아 2003. 9. 21. 11:40

7월 31일 목요일

새벽 5시 50분, 워싱턴 D. C를 향해 아침 길을 서둘렀다.

워싱턴 D. C 외곽에 들어서자 다른 도시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분위기가 감지된다.

거리를 걷는 사람들, 자동차를 운전하는 사람, 버스를 타는 사람들, 모두다 흑인이다.

D. C의 밤엔 부시 대통령 부부만 백인이고 나머지 모두 흑인이라는 우스개 소리가 빈말만은 아닌 듯 싶다.

주택단지에 들어서서도 애초 개인 주차장을 짓지 않았는지 모든 차들이 도로에 일렬 주차되어 있었고, 거리를 달리는 자동차들도 다른 도시와 달리 번쩍번쩍 빛나는 중형차들은 보이지 않았다.

물론 아침 일찍이라서 백악관이나 의사당으로 출근하는 차들이 아직 나오지 않은 이유도 있을 것이다.

주택단지를 빠져 나와 미국 정치의 심장부인 국회의사당으로 향했다.

9시부터 줄을 섰으나 관광객이 많아 우리는 10시 45분 티켓을 받고 경비가 삼엄한, 흡사 공항 검색대를 무색해 할만큼의 검색을 받고 국회의사당에 들어섰다.

한국어 설명서가 있어 그것을 들고 넓은 홀에 들어서니 미국 개척시대의 커다란 그림들이 그려져 있고 천장 높은 곳엔 양각된 조각들로 훌륭하게 꾸며져 있었다.

아래층으로 내려가니 각주를 대표하는 정치가 한 명씩이 커다란 동상으로 만들어져 있었고, 한쪽에서는 누군가를 인터뷰하려는 듯 카메라들이 분주하게 설치되고 방송 관계자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각자 안내 요원의 설명을 받아 움직이는데 안내원들의 말소리가 울려 귀가 멍멍할 정도이고, 나는 그들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으니 우리아이들과 같이 따분해하고 있었다.

의사당을 빠져 나와 우리는 너무나 먼길을 걸어 한국전 참전용사비가 조각되어 있는 공원에 갔다.

'Korea War '라고 써 있었으며 포로, 부상자 등의 수가 적혀있었는데 난 이 앞에서 부끄러워해야 하는지 ,한국을 알리는 기회여서 좋아해야 하는지, 같은 동포끼리 살육의 전쟁을 했다는 사실에 마음을 아파해야 하는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동전을 던지는 분수대 앞엔 유일한 한국의 100원 짜리 동전이 분수대 속에 떨어져 있었고 한국의 테마공원이라 그런지 여기저기에서 한국인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곳에서 한국전에 참전했다는 백인 할아버지를 만나 남편은 한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바로 옆에 있는 링컨 기념관에 가고 싶었으나 아침, 점심도 못 먹고 너무 많은 길을 걸어 한 발짝 떼기도 어려워 택시를 타고 차를 주차해 놓은 유니언 역에 돌아갔다.

택시를 타고도 10분 가까이 갔으니 초인적인 힘으로 엄청나게 걸은 것이다.

백악관 앞에 잠시 정차해 주위를 둘러보고 사진 몇 장을 찍고 나왔다.

백악관이 무척 웅대하고 장엄할 줄 알았는데 멀리서 보아서 그런지 그다지 훌륭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미합중국 수도의 모습에 나는 다소 당황스러웠다.

높고 크고 웅장한 건물이 많을 줄 알았으나 오히려 다른 도시들 보다 못 한 것 같고 거리 또한 쓰레기가 날아다니고 지저분했다.

주유소도 지저분하고 유니언 역으로 오는 택시도 너무 더러워 내리면서 찝찝한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다.
에어컨도 없고, 차 천장의 헝겊은 다 떨어지고, 시트엔 시커먼 때가 절고 절었고, 고장난 문짝엔 전기선 대 여섯 줄이 얽혀 있었다.

그런 택시를 난 한번도 타 본적이 없다.

그런 지저분한 택시를 세계의 심장부 미합중국의 수도에서 타 볼 것이라는 생각은 해보지도 못했다.

그리고 택시비는 6불인데 세금이 5불이라니, 배보다 배꼽이 더 클 지경인 이상한 경우도 있다.

우리는 다시 차에 올라 쉐난도 국립공원을 가로지르는 64번 고속도로를 타고 버지니아 주를 경유해 테네시 주의 낙스빌로 향했다.

오늘 하루 한끼로 때우고 강행군을 한 때문에 가족 모두 너무나 지쳐 있어 일찍 쉬기로 하고 목적지를 훨씬 못 미쳐 숙소를 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