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8월 25일 화요일
이곳에 살면서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많은 사람들과 이별을 했었다.
오늘 또 한 가족과 이별을 한 날이다.
어떤 이별이 서운하거나 슬프지 않은 것이 없지만 오늘은 그 서운함이 메가톤급으로 다가왔다.
4년 전 미사후 성당의 식당에서 점심 식사를 하다 우연히 초중고 동창을 만났다.
한국에서도 멀고 먼 이 땅에서 12년 동창을 만났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만큼 반갑고 신기한 일이었다.
학창시절엔 그다지 친하지 않아서 그 화영이 어떤 성품을 가졌는지 기억이 안 나지만 이곳에서 만나면서 '어쩜 이렇게 잘 성장했을까' 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될 정도로 올곧은 마음과 따뜻한 성품을 가진 것을 알고 참 많이 감사했다.
친척 없는 이곳에서 친척 삼아 살라고 이렇게 좋은 친구를 보내주셨구나 하면서 서로에게 정말 좋은 동반자가 되었다.
그랬는데 화영의 딸 소정이 뉴욕 근처의 버팔로로 대학을 가게 되었다.
화영이 기러기 가족으로 두 아이를 데리고 와 있는 상황에서 딸은 버팔로에서, 화영과 아들은 휴스턴에서, 남편은 한국에서, 세 집 살림하는 것이 정말 만만치 않은 일인지라 결단을 내려 세 식구가 같이 버팔로로 이사를 가기로 결정을 하게 된 것이다.
지금 뒤돌아 생각해보니 4년 전 우리가 만났던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생각을 해 본다.
가족이 떨어져 사는 힘든 상황을 이겨내면서 화영은 주님을 여러차례 만나 신앙적으로 하루가 다르게 깊이 성장을 해 갔고 화영을 통해서 나 역시도 주님께 나아갈 수 있는 마음의 문을 열어 주셨다.
주님은 이제 화영을 다른 도구로 쓰기 위해 데려가시는 것이라는 것을 화영도 나도 확신한다.
마른 땅에 물을 주게 하고 , 분열이 있는 곳에 화합을 시키는 도구로 쓰실 것이다.
그래서 내가 인간적인 생각으로 서운해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서운함을 떠나 축복해 주어야 마땅할 것이다.
화영이 아무도 없는 낯선 곳으로 이사를 간다고 했을 때 다들 화영 걱정을 하지만 두 번째 말이 다 똑같다.
"어, 그럼 세라피아(제 세레명입니다.)는 어떻게 해?"라는 말이었다.
낯선 곳에서 남편 없이 살아가는 화영보다 내 걱정을 더 많이 했다니 어떤 면에선 맞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오늘 공항에 도착한 소정아빠와 저녁 미사를 보고 밤 9시 50분에 휴스턴을 떠났다.
쉬지 않고 운전해서 24시간을 달려야 목적지에 도착 할 수 있을 것이지만 모처럼 가족이 함께 하기에 즐거움이 더 클 것이다.
'주님, 정화영 스콜라 스티카가 이웃도 없고 친척도 없고 친구도 없는 낯선 곳으로 떠났습니다.
낯선 곳으로 떠나는 그 마음에 불안과 두려움을 없애 주시고 용기와 힘을 주시어 새롭게 시작할 수 있도록 지켜 주십시오.
가는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갈 수 있도록 도와 주시고 어둠 속에서 더 빛날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해 주십시오.
분명 주님께서 스콜라스티가 가족과 늘 함께 하실 것을 믿습니다.
이 모든 말씀 그리스토 이름으로 비나이다. 아멘'
*친구입니다. 앞으로도 오랫동안 행복하기를 기도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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